2장. 분노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최근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고, 누군가의 행동 하나에 순간순간 분노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쾌해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감정의 역치(Emotional threshold)'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에 과잉 반응하는 사회는, 이미 만성적인 감정 피로와 신뢰 결핍을 겪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팔이 살짝 닿은 일, 채팅 끝 문장에 마침표가 하나 더 찍힌 일, 단톡방에서 나만 초대되지 않은 일, 어쩌면 정말 사소할 수도 있는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나를 무시하나?', '나를 싫어하나'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단지 '예민해져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신뢰가 바닥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불쾌함은, 개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불신이 일상화된 공동체의 감정 구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추측하게 만든다.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보였나 봐', '그 말은 나를 깎아내리는 거잖아', '저 사람은 날 무시하는 게 분명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좋게 해석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신은 관찰이 아니라 추측을 만들고, 그 추측은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데 먹이로 쓰인다.
또, 우리는 '실망해서 아플까 봐' 먼저 의심부터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신뢰는 반복된 경험과 상호작용에서 쌓이지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관계들 속에서는 그럴 시간도, 이유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먼저 벽을 세우고, 선을 긋고, '기대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방어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 불안한 사람'으로 만든다. 점차 모든 관계가 조건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게 설계되어 있다. 그것은 진화론적으로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관계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라는 불안 속에서는,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긴장은 우리의 감정 시스템을 과민하게 만든다.
도대체 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걸까?
그건 아마도, 그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믿지 못해서일 것이다. 우리가 '진짜 불쾌해하는 것'은 말 자체가 아니다. 그 말이 '나를 지지해 줄 사람에게서 나온 게 아니다'라는 감정의 단절인 것이다.
결국, 그렇게 감정이 거칠어지는 사회는 신뢰가 고갈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람 간의 불신은, 말보다 먼저 감정부터 무너뜨린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 사회가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가 얼마나 신뢰를 잃고 있었는지를 먼저 살펴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감정은 그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반영이다. 그렇기에, 먼저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처럼 계속 쉽게 불쾌해지고 서로에게 분노에 찬 사람으로 보이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