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냉소, 식어버린 분노의 감정

2장. 분노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by 제인 Jane




분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는 자리는 텅 비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목소리도 다 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힘이 다 빠진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우리는 개운한가? 아니면, 오히려 더 차가워지는 걸까?


감정을 가감 없이 '배출한 만큼 다 쏟아낸' 그 후에는, 오히려 허무하고 공허할 때가 많다. 아마 그 자리에 남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냉소'일 것이다.


냉소는, '이제 진정되었으니 더 이상 분노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이 아니다. '더 이상 이 사회에 또는 이 관계에 기대하지 않겠다'라는 지독한 실망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야", "계속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그냥 조용히 살면 돼", "딱 받는 만큼만 대충 일만 하고 말아야지", "내 알 바 아니야"같은 말들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감정이 마모되어 버린 사람들의 마지막 방어기제인 셈이다.



분노라는 감정은, 사실 아직 기대가 남아 있을 때나 생긴다. 사람에게, 제도에게, 사회에게 '이래서는 안 돼'라는 최소한의 희망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가 반복되고 갈수록 무력해지면, 사람들은 감정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감정과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인데, 그때 탄생하는 것이 냉소인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냉소가 너무나 빠르게 '전염'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해봤자 다 똑같지"라는 말이 열정을 집어삼키고, 학교에서는 "공부한다고 뭐 달라지냐"라는 말이 미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잠식한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이 아이의 질문들과 꿈을 막기도 한다.


냉소는 가끔씩 '현실적인 태도'라는 이름으로 위장되기도 하지만, 그 실체는 무력한 분노의 형태이고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한 냉소가 일상 곳곳에 소리 소문 없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이후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 것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희망'은, 말이 아니라 에너지에서 시작된다. 냉소적인 사회는 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가 냉소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감정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냉소가 처음에는 실망을 줄여주니 좋은 것처럼 느껴져도, 결국에는 우리 삶의 온도를 낮춰버리는 강력한 요소가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차갑게 사는 것은, 우리를 덜 아프게 해주는 것처럼 보여도, 그 차가움 속에서 점차 우리 자신을 잃고 관계를 잃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늦지 않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아직 화를 낼 힘이 남아 있는 거라면, 그것은 아직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감정을 포기하지 말고, 냉소를 삶의 지혜로 착각하지도 말자. 대신, 감정을 식히지 말고, 잘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또 가르치자. 그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다시 연결될 수 있고,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감정의 온도가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