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소명으로 일하는 법 (Meaning Over Machine)
우리는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자주 묻지만, 정작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는 못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치를 ‘믿고’ 산다고 하기보다는, 가치를 ‘빌려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들, 특히 성취, 안정, 성장, 인정 같은 것들을 우리는 자신의 가치로 자주 착각한다. 하지만,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법은, 그런 타인이 설정해 놓은 기준이 아니라 내면의 기준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가치 명료화’이다.
가치 명료화는 ‘내가 뭘 좋아하나’를 묻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깊이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루이스 E. 라스(Lewis E. Raths)는 가치 명료화 과정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대안 중 하나를 의식적으로 ‘선택(choosing)’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선택을 소중히 여겨 ‘존중(prizing)’하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실제로 일관되게 ‘행동(acting)’하는 것이다. 이는 즉, 가치는 ‘생각’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패턴’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를 테면, 안정을 선택하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정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안정된 관계나 책임감을 지키는 방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성장을 선택하는 사람 역시, 경쟁심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자기 확장의 욕구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의 선택 이면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이 바로 가치 명료화이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이 진정한 자기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면의 경험과 외부 행동이 일치(congruence)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치가 명료할수록 내면은 덜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신경과학적으로도 가치 명료화는 감정과 인지의 통합 과정이다. 전전두피질이 선택을 주도하고, 섬엽은 감정적 일치감을 감지한다. 그렇게 두 영역이 협력할 때,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미를 느끼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치 명료화는 결국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를 스스로 언어화하는 일인 셈이다. 자신만의 그 언어를 찾는 순간, 삶의 많은 혼란이 정리될 것이다.
사실 AI 시대에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일’ 속에서 보내며, 그 일은 곧 나의 정체성(identity)과 연결된다. 하지만 동시에, 일이 정체성을 모두 대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리가 아니라 ‘통합의 구조’이다.
심리학자 도널드 수퍼(Donald Super)는, 인간의 직업 발달을 ‘자아의 실현 과정’으로 보았다. 즉, 일은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자아의 무대인 셈인 것이다. 그래서 일과 정체성, 그리고 삶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사실 인간 본연의 구조와도 맞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일과 관계, 자기 인식, 그리고 감정 경험을 각기 다른 영역으로 저장하거나 인출하지 않는다. 뇌는 그것들을 같은 회로(특히, 기저핵과 내측전전두피질)에서 ‘반복적 행동’과 ‘정체성의 기억’으로 동시에 처리한다. 이는 즉,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일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정의하는 신경적 자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의 의미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게 아니라 정체성의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문장이 바뀔 때, 우리의 삶 전체의 문법이 바뀐다.
‘일-정체성-삶’의 통합 구조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일(Doing)은 “내가 하는 것”을 의미하는 행동의 층위로, 정체성(Being)은 “내가 누구인가”를 의미하는 존재의 층위, 마지막으로 삶(Living)은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의미하는 연결의 층위이다. 이 세 가지가 일치하면, 인간은 ‘몰입’과 ‘의미’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하나라도 어긋나면, 결국 방향을 잃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지만, AI는 일을 -기깔나게- 잘한다. 이제는 -가끔씩 놀랄 정도로- 일을 더 잘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AI는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인간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일을 통해 나를 잃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사실 인간만큼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각설하고, 심리학에서는 그러한 구조를 '자기 통합(self-integr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써 불안을 줄이고 동기를 강화하며, 회복 탄력성을 높인다. 그렇기 때문에, 일과 정체성, 그리고 삶이 연결된 사람은, 삶의 불확실성을 견디는 심리적 근력(mental strength)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우리는 커리어를 설계할 때, 단순히 ‘적합한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와 일치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 기술의 핵심은 언제나 정렬(alignment)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