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소명으로 일하는 법 (Meaning Over Machine)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인간은 맥락을 학습한다. 이번 장에서는 그 차이를 만드는 네 가지 인간의 능력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공감력(empathy), 판단력(judgment), 자율성(autonomy), 그리고 가치 감수성(value sensitivity)이다.
첫 번째로는, 공감력부터 이야기해 보자. 먼저, AI는 타인의 감정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지는 못한다. 반면에, 인간의 공감은 정보의 이해가 아니라 ‘정서의 조율’에 가깝다. 신경과학자 타니아 싱어(Tania Singer)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때 인간의 뇌는 통증 회로와 보상 회로가 동시에 활성화된다고 한다. 즉, 우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동시에 연결의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경험이 바로 관계의 질을 바꾸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과 일을 통해 겪는 피로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두 번째는 판단력이다. AI의 판단은 확률이지만, 인간의 판단은 의미의 해석이다. 그래서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답만을 내놓지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의 맥락’까지 고려한다. 이는, 단순히 논리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개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판단에는 항상 ‘직관(intuition)’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의 판단은 종종 비효율적이지만, 그 안에는 도덕적 방향성이 들어 있다.
다음 세 번째는, 자율성이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AI와는 달리, 인간은 가치를 기준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이것은 결국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뇌 과학자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은, ‘자유의지 실험’에서 뇌가 의식보다 먼저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했지만, 그 후속 연구들은 이렇게 반박했다. “인간은 충동을 느끼더라도, 그 행동을 멈출 수 있는 자율적 조절력을 가지고 있다. 이 조절력이 바로 인간의 의식적 선택의 본질이다.” 쉽게 말하면, AI는 선택을 계산하지만, 인간은 선택을 결단하는 것이다. 그 결단이 바로 자율성을 증명하는 증거이지 않을까?
이제 마지막은 가치 감수성이다. 인간은 AI가 좋아하는 효율보다는, 타인의 마음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정답이 하나뿐인 상황은 AI가 더 잘 처리하겠지만, 정답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인간의 가치 감수성이 더 우수하게 발휘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복잡성(moral complexity)’이라고 부른다. 결국 이 복잡성을 견디고 균형을 잡는 능력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판단력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AI가 가진 ‘지능’은 처리 속도와 정확도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지능’은 감정과 맥락, 가치의 영역에 있다. 그렇기에, 앞선 네 가지 능력은 그 자체로 기술(skill)이라기보다는, 의미를 다루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의미를 감지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인간 고유의 작동 체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는, 그 네 가지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1990년대,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이 ‘감정지능(EQ)’라는 개념을 제시했을 때, 세상은 처음으로 지능의 정의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아는 IQ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면, EQ는 사람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AI가 인간의 감정 언어를 모방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다음 단계인, ‘의미지능(Meaning Quotient, MQ)’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지능은, 감정과 가치를 연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말해주는가’를 해석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신경과학적 그리고 인지심리학적 능력의 총합이다. 감정은 편도체에서 시작되지만, 그 감정을 ‘나의 경험과 가치로 연결’하는 과정에는 전전두피질과 해마(hippocampus)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 회로의 통합적 작동이 바로, ‘의미를 느끼는 뇌’의 기반이다.
이 의미지능이 높은 사람은,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쉽게 방향과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는가’를 질문한다. 쉽게 말해, 감정을 억누르거나 휘둘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해석 가능한 신호’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곧, 나의 감정과 가치, 그리고 행동을 일치시키는 심리적 통합력이다.
물론 AI도 인간의 감정을 ‘읽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알고리즘은 만들 수 없다. 의미는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미지능은 삶을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감정지능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MQ, 의미지능은 ‘자신과 세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의미지능은 앞으로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 될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기술을 ‘왜’, 그리고 ‘어떤 가치’로 사용할지 결정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