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신과 응급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어언 8년이 지나고 있다. 그 사이에 병증으로 나는 수 많은 변수와 싸워야 했고 말하기 힘든 일 들이 일어나곤 했다. 때로는 정신병을 앓는 내가 견딜 수 없이 싫었고, 어떤 때에는 길고 긴 자기 연민의 굴 속에 파고들기도 했다. ‘저는 우울증 환자입니다’라고 책까지 내버린 이 마당에 숨길게 뭐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신병은 아주 교묘하게 일상을 방해했고, 나는 이리저리 휘말리며 그저 숨이 붙어 살아 있기 만을 바라곤 했다.
종종 약이 듣지 않는 상황이 생기곤 했는데, 술을 마셨거나, 과하게 조증 증세가 나타나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내가 먹은 십 수알의 약이 아무 힘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외출이 힘들어서 병원을 못 가는 경우, 처방받은 약이 바닥나 버리기도 자주 그랬다. 약을 아예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의 나는 아플 수 있는 모든 곳이 아팠다. 방금 샤워를 했는데, 마라톤을 하고 온 마냥 온 몸이 젖어있고, 심각한 오한으로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 우울증, 조울증 등을 앓으면 종종 외출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긴다. 많이들 ‘빨리 병원가서 약 받아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힘들면 택시 타!’ 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차원이 아니다. 나보다 열배, 스무배는 더 커다란 존재가 내 몸을 온 힘으로 누르는 듯이 괴롭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지만 그것을 이겨냈다고 쳐도 그 다음은 무한한 현기증과 아주아주 무거운, 코트를 물에 담궜다 입힌 마냥 한 걸음 한 걸음이 도전과 괴로움 뿐이다.
그런데 이 증상들이 새벽에 나타난다면? 나는 오롯이 견디는 수 밖에 없다. 옆에 친구가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그다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친구나 가족이 지켜보고 계속 지켜보다가 ‘안되겠다’싶어서 종합병원 응급실을 데리고 가게 된다.
병증을 설명해야하는데,
“먹던 약이 끊겨서 마침 그때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온몸이 아프고, 체온 조절이 되지 않는다.”
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료진이 정신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깊은 지식이 있는지, 그 날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사람이나 교통사고를 당해 온 몸이 부서진 사람과 마주친다면 그 날의 나는 엄청나게 운이 나쁜 날이다. 응급실은 선착순이 아니고 응급순 이니까.
피도 보이지 않고, 골절하지 않았으며 내가 말 하는 고통을 포함해 타인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신기할 만큼 견딜만 해 보인다. 물론 정신의학과도 당직의가 있으니, 응급실에서 연락해 오라고 하지만, 눈을 부비며 나타난 전문 의료진도 자살 시도가 있었는지, 약을 많이 먹었는지 등의 사항만을 묻고는 눈을 부비던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수 많은 응급실 경험중에 가장 고마웠던 처치는 구역감이 느껴진다는 말에 항구토제를 링겔에 섞어 맞춰준 경험이었다. 땀으로 담요가 다 젖어도, 온몸이 이가 바득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한기를 느껴도, 실신할 것 같은 정신과 욱신거리는 근육통이 동시에 느껴져도…, 구역질이 가라 앉은 그 상황이 너무 고마워서 간호사 이름을 외워뒀다. 물론 금세 잊고 말았지만 말이다.
피를 흘리지 않아도, 온몸의 모든 뼈가 두 세등분으로 쪼개지지 않아도…, 노로바이러스보다 코로나보다 더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외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과 응급실이라니…, 욕심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지만, 하루 중 어느 때건 자율신경계가 무너진 인간은 고통으로 허우적 거린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어느 의료진도 이해하지 못하는 통증에 마음이 내려앉는 일은 매번 예상하지만 현실은 한 층 더 외롭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