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괜찮습니다 10화

by sim


10. 펫로스 증후군 (생강이 이야기)


전부 다 우리집 마당은 아니었다. 마당이 큰 집 한 구석에 세를 들어 살았다. 사실 나는 세를 들어 산다는 것이 창피하거나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자주 했던 것 같다.


“우리집은 이 마당의 얼마 만큼을 실컷 써도 되는 걸까?”


그렇게 내 마음으로 그어 둔 투명한 선이 있었다. 그 투명한 선 안으로 철로 된 줄로 묶인 강아지가 생겨났다. 강아지는 어렸고 하얗고 작았다. 내가 보일 때 마다 두 앞발을 들고 낑낑거렸다. 갑자기 생겨난 강아지가 무섭기도, 낯설기도 했다.


부모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말로 조근조근 따지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아버지는 그 즉시 일어나 마당으로 가서 검은 구둣발로 그 작은 강아지 배를 찍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로 기억하는데, 발로 찍힌 강아지가 눈이 튀어나올 듯 엎으려 낑낑대다가 구석으로 도망을 갔다.


나는 위의 한 문단의 기억이 문신처럼 뇌에 새겨졌다. 그리고 그 강아지는 엄마가 옆에 옆동네까지 데려가서 전신주에 묶어 두고 집에 오니, 문 앞에서 헥헥 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쑥쓰럽고 신기한 말투로 나에게 설명해줬지만 내 얼굴은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굵게 일그러졌다.


그때였을까. 나는 마음으로 한 발짝 부모님으로 부터 떨어져서 걸었다. 내 마음 속 엄마는 어떤 이유로 나도, 어딘가에 묶어두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아빠는 내가 기분을 나쁘게 하면 나를 죽도록 밟아 패는 것은 아닐까. 신뢰는 사라지고 나는 억울하고 슬픈 마음이 있었지만, 동시에 조금 떨어져 걷고, 또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그런 시간들이 생겨났다.




생강이는 한 여름, 어느 고등학교 창고에 버려진 강아지였다. 고무로 된 바가지 두 개 중 하나에는 싸구려 사료가, 나머지 하나에는 먼지가 둥둥 떠있는 물이 있었다. 창고는 말 그대로 창고였고, 지저분한 먼지, 걸레냄새,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 답답한 기운만 맴돌았다. 그 곳에 ‘생강’이가 버려졌다. 어떤 강아지들은 출생이나 만남을 버려짐으로 설명해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중에 생강이가 있었고, 친구들과 가족처럼 함께 살던 때라서 친구 한 명이 며칠을 동동거리며 두고 보다가 목욕만 시켜주겠다고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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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나보다 더 상처 있는 아이를 돌볼 여력이 더 없었다. 이미 집에는 ‘하루’라는 희고 착한 스피츠가 한 마리 있었고, 두 마리는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생강이가 목욕을 마치고 하루의 수건으로 털을 말리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몇 번 점프를 해서, 그 앞에 서있던 나의 골반정도까지 뛰어 올랐는데 고백하자면 나는 그 때 생강이에게 사랑에 빠졌다.



이름대로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정말 좋다고 확실히 표현하는 아이였고, 산책을 하다가 신호등 앞에 서면, 왜 가다 멈춘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하늘 높이 뛰었다. 가자고, 마저 가자고.



그렇게 씩씩하던 생강이도 나이를 먹고 무릎도 아프고 눈도 탁해지는 노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더 이상 신나는 점프는 못하지만, 그래도 씩씩했다. 그 어느 날 목과 어깨 사이에 이상한 결정체가 만져지는 그 날, 그 순간 이후로 생강이는 더 빠르게 죽음과 가까워졌다. 알아낸 병명은 혈액암. 이미 번질 대로 번졌고, 항암을 진행해도 치료가 제대로 진행이 가능 할 지 모를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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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는 좋지 않았다. 수술도 불가능하고, 생명 연장 차원에서 하는 항암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2025년 이른 봄에 발견한 암은 2025년 5월, 늦 봄과 초 여름 사이에 생강이를 앗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26년 봄을 앞두고 내가 생강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펫로스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러리라 하는 체념 때문이다. 그 무조건적이고 당연한 사랑을 매일 순간순간 받아온 내가 지금 고작 해줄 수 있는 일이… 내가 생강이를 떠나 보낸 후 가슴에 주먹만한 멍울이 생겼고 종종 그 멍울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생각하고, 불러보고, 울기도 한다는 것이다.


언제쯤 씩 웃으며 ‘그때 말썽꾸러기였지’, ‘참 솔직한 아이였어’라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나보낸 아이를 그리워 하며 멍울진 마음을 쓰다듬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의 동료애와 깊은 우정의 마음을 보낸다.



토닥토닥 타자기를 치고 있으면 의자 다리 쪽에 몸을 꼬아 눕고, 나를 가만 올려다 보던 갈색 요크셔테리어. 나는 이제 그를 위해 글을 쓰고, 아직도 의자를 움직이기 이전에 잠깐 씩 머뭇거린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