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5화

5화 절화의 향기

by sim

‘새벽 꽃시장에 간다’


에는 무언가 모를 향기롭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진 이 같다는 이미지가 담겨있다. 실상과는 얼마나 다를지 몰라도, 내가 다니는 양재동 화훼시장의 이야기를 담아보겠다.


양재 절화시장 모습


양재동 화훼시장은 절화시장*과 크게 두 동으로 나뉜 분화 시장, 구석에 흙과 화분을 파는 자재시장, 그리고 커다란 경매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주로 분화 시장, 가동·나동을 열심히 파헤치는 자에 속하는데 어떤 때에는 절화 시장으로 발길이 닿기도 한다.

양재 꽃시장 구조

동네 꽃가게에 들어가면 나는 향기를 기억하는가? 정확히 어떤 꽃인지는 몰라도 열심히 뿜어내고 있는 꽃가게만의 향기가 있다. 절화시장 문을 열면 그 백배쯤 되는 알싸하게 느껴 질만큼 쏘아붙이는 엄청난 꽃냄새가 난다.

그렇게 향기로 코가 어질어질하게 들어선 시장은 북새통이다. 나처럼 꼭 기분전환해야 하는 시기여서 홀로 혹은 둘이 온 사람들과, 소매 꽃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꽃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절화 매장은 밤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운영한다. 심심해서 놀러 가기에는 꽤 애매하고 이른 시간이다. 그러니 대부분 각자의 목적이 확실하다. 몸의 움직임도 날렵하고 빠르다. 이 와중에 천천히 꽃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나처럼 입꼬리도 잔뜩 올라가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저건 뭐예요?”하며 묻거나 사진도 찍는 이들은 기분전환을 하러 온 이들이다. 그들은 슬슬 걸어 다니며, 계절별로 눈에 띄는 꽃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사진을 찍거나, 때로는 얼굴을 들이대며 향기를 맡는다.


새벽 꽃시장에 가 보면 삶이 생생히 느껴진다. 수만 송이는 훌쩍 넘을 그 많은 생명체들과 그걸 다루는 손. 바삐 다니며 꿀벌처럼 좋은, 신선하고 모양도 예쁘게 잡힌 꽃을 사러 다니는 소매상도 즐비하다. 그 가운데에 서성거리면, 나만 섬처럼 둥 떠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잡스러운 기분은 꽃향기가 치워준다.


양재 절화매장 모습

절화를 대량으로 구매할 일은 자주 없다. 그러니, 집 근처 꽃가게를 터 둬야 한다. 코스메틱 브랜드 이솝(Aesop)은 근처에 꽃집, 서점이 있는 곳에 매장을 연다고 한다. 우리의 삶의 지향성도 이와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 멀어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꽃집이 있는 곳에 살고, 작은 책방이라도 있는 곳에 살고 싶은 소망을 갖는 것, 말이다.


나는 기분이 다운되는 게 감지되면 동네 꽃 가게를 자주 가는 편인데, 가면 대단할 것도 없이 “한 두 송이 집에 꽂으려고요.” 하면서 조금은 덜 핀 꽃 몇 송이를 산다. 포장도 투명 비닐이 전부고, 자주 온다고 가끔은 이름 모를 소재*를 넣어 주시기도 한다. 사실은 꽃이 필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나는 사실 꽃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 행위가 내게 작은 위로가 된다. 나 자신에게 화사한 분위기를 선물하는 것이다.


고급 호텔이나 백화점에 가보면 꽃 가게가 하나씩 있다. 서울시내 중심으로 간략히 설명하면, 조선호텔에는 ‘격물공부’ 롯데호텔은 롯데백화점 지하에 ‘헬레나 플라워’ 포시즌은 ‘니콜라이 버그만’ 등이 있고, 백화점으로는 신세계백화점 ‘제인 패커’ 현대백화점 압구정 ’ 마이알레’ 갤러리아 백화점 ‘지스텀’이 있다. 꽃 가게가 고급 호텔이나 백화점 지하를 꼭 차지하고 있는 것은, 꽃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손님들에게 선사해주고 싶은 기쁨과 행복에 꽃이 차지하는 바가 꽤나 중요한 것 아닌가 짐작해본다.

포시즌의 '니콜라이 버그만' 내부


helena.jpg 롯데호텔(롯데백화점 지하) 헬레나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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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지하에 위치한 지스텀

고급 매장 안에 있다 보니, 가격이 높은 편인데, 상대적으로 꽃의 컨디션은 아주 좋은 편이다. 한두 송이도 정성껏 포장해주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꼭 구입하지 않아도 꽃 냉장고를 구경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다음에 올게요.’라는 마법의 인사가 있으니까.


절화의 향기에 값은 따로 없다. 다만 절화의 향기를 오래 묶어 두려면 한 두송이라도 구매해서 방 한 켠 내 곁에 두어야 한다. 일주일에서 열흘만 즐길 수 있는 절화를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꽤나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지라도, 어떤 것에도 생을 마무리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 절화는 그것의 형태상 조금 더 짧을 뿐.


꽃 한 송이로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좋은 계절이다. 오랜만에 길을 나서서 볕을 쬐는 이들에게 꽃 한 송이 구매하기를 권하고 싶다. 바깥에서 느꼈던 봄을 집안으로 들이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봄이 되면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꽤나 늘어난다. 대학 다닐 때, 시 강의시간에 시인이셨던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주 기억에 남는다.

“이 봄, 이 밝은 길거리에서 우울함을 느낀다면, 매우 정상이다. 마음이 언제나 봄일 수는 없는데 모두 밝게 웃고 만 있는 것 같지. 그것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봄, 꽃보다 마스크에 쓰는 돈이 고정지출이 되어버린 시대. 당신이 밝은 볕 아래 우울함을 느낀다면 매우 정상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물러서 있지만은 말자. 봄이 절기상 5월까지 인 것이 느낌상, ‘이제 시작해. 이제 봄이니까.’라고 여유를 주는 것 만 같으니까.



*절화시장(Cut Flower) : 식물로부터 꽃이나 꽃봉오리를 줄기와 잎과 함께 잘라낸 것을 절화라고 한다. 그것을 대단위로 판매하는 곳을 절화시장이라고 한다.

*소재 : 주로 꽃이나 꽃봉오리가 달리지 않은 절화 식물. 꽃다발의 부피를 풍성하게 키워주거나, 꽃의 분위기를 완성해주기도 한다. 유칼립투스, 안개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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