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정욱 May 20. 2019

사이코패스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인가?

제임스 펠런 <괴물의 심연>을 읽고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혹은 나르시스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 그런 이들이 많았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을 관찰하고 있다. 전문 서적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수준에선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많이 읽고 연구하고자 한다. 물론, 사이코패스를 직접 보는 일은 드물지만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스트는 생각보다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나온 경험을 반추하다보면 당신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통계적으로 그들은 인류의 4% 정도로 분포한다. 25명 중 1명이고, 보통 교실에서 1명이다. 꽤 많다.


나는 그들은 인류의 또 다른 ‘종’이라고 정의하는데,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세계관에 주는 영향은 크다. 하나의 예로 나는 그 누구보다 교육을 좋아하고, 본성보다 양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간의 가능성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랬기에 더욱 그들의 존재 자체에 배신감을 느꼈다. '자기인식 능력'과 '공감 능력'이 없을 때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지, 이제는 안다. 과거의 나는 모든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결코 뉘우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지금은 이해한다. 


지난 주에 <괴물의 심연>을 읽었다. 저자 ‘제임스 펠런'의 이력이 재미있다. 그는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연구하던 뇌 과학자였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의 뇌가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충격에 빠진다. 알고보니 자신의 먼 조상들 중에 악명놓은 연쇄살인마가 몇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성향이 아주 강하다. 저자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맨 아래 TED영상을 참고하시길.



책 자체의 완성도는 떨어지는 편인데, 직업이 뇌과학자다 보니 내용 이해에 굳이 필요없는 전문 용어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충격적으로 재미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본인이 바라보는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신의 차이를 발견할 때다. 본인은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주위에선 그리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담담히 기술한 글을 보면 분명 일반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일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의 차이가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 관대하다. 연구 결과, 60%는 평균 이상으로 운동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70%는 자신의 리더십이 평균 이상이라고 여기고, 85%는 자신이 또래보다 남들과 잘 지낸다고 말한다. 즉, 보통 자신을 남들보다 더 호감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그런 귀여운 수준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자기인식 능력이 제로에 가깝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한없이 도취되어 있다. 어쩌면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약하고 자기 인식 능력을 그나마 끌어올린 저자가 그들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게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표현들이 흥미롭다. 모두 저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쓴 문장이다. 

나는 사람들이 비극적이거나 슬픈 사건으로 울고 있더라도 내가 눈물도 나지 않고 심장박동도 흔들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진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부정행위는 재미가 없다. 교묘하게 조종하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게임은 무자비하게 해야 한다고 승리가 전부라고 가르쳤다.

나는 남을 해치는 데서 기쁨을 얻지는 않는다. 나는 단순히 나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동안 어쩌다 누군가를 해쳐도 크게 유감으로 느끼지 않을 뿐이다.

나는 또 상대의 신뢰를 얻으려 거짓말을 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내가 사람들을 조정하는 것은 대개 쾌락과 관계 있다.

나는 가족이건 생면부지의 남남이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교우관계는 대부분의 경우보다 덜 순수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공감을 하는 것처럼 가장할 줄 안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듣는 일 또한 좋아한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도 이야기를 꾸며내지만 진짜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만이 그토록 큰 판돈을 걸어놓고 고난도 연기를 반복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바람과 거짓말에 대한 것이다. 바람을 피웠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이 정도면 분명 정상 범위는 아닌 것 같은데 스스로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하다. ;; 

2008년에 나는 연달아 바람을 피웠고, 결국 다이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괴물의 심연 저자, 제임스 펠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해를 넘어서 깊이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의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기대다. 그는 스스로 사이코패스(혹은 소시오패스)의 4가지 요인 가운데 3가지 요인이 있고 반사회적 성향만 없는 '친사회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판단했지만, 나는 그 정도가 약할 뿐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본인도 인정한 나머지 3가지 성향은 대인관계가 피상적이고, 정서적으로 냉담하고, 행동은 무책임하다는 것. 


저자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답변도 재미있다.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한다.””중요한 순간이 오면 신뢰할 수 없다.””자아도취적이다.” “양심의 가책이 눈꼽만치도 없다.” "법이나 권위나 사회법규를 존중하지 않는다.” 무책임하다.””공감할 줄 모른다.””병저인 거짓말쟁이다.” “남 탓을 한다.” “끊임없이 지루해한다.” “겁이 없다.” “자신과 더불어 남들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린다.” “무슨 짓을 하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평가를 들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책의 초반에 저자는 자신이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는데, 어쩌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들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편해영의 소설 <홀>이나 사이코 패스를 다룬 소설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볼 때의 반전과 섬뜩함이 이 책을 보면서 비슷하게 찾아왔다. 결국 그들은 평생토록 자기변명서를 쓰면서 자신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소설, 종의 기원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사이코패스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이 아닌, 사회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는 사이코패스가 인류를 존속시킨다고 말한다. "그들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결정을 내리는 유능한 지도자일 수 있으며,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기 때문에 전투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때때로 자신의 삶에서 무모함을 맛보고 싶어할 때 사이코패스는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힘이 있다. 정치인, 의사, 세일즈맨, 변호사, 금융인, 사업가 등에게서 굉장히 필요한 역량이긴 하다. 


나 역시 경험한 바 있지만, 주위의 소시오패스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분명 위험하긴 하지만 큰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들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의 교류를 끊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역할을 가장 극적으로 해낸 것이 스티브 잡스이긴 하다. (현실 왜곡장을 만들 수 있는 힘)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역할 만으로 사이코패스가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보기엔 여전히 근거가 부족하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그러한 ‘포식자’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 아무리 친사회적 소시오패스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기변명에 쉽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의 전문 영역이기에. 


마지막으로, 저자는 뇌과학자로서 양육이 아니라 본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비교적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양육환경 덕분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기존 견해를 뒤엎는다. 이 부분이 그나마 가장 큰 자아성찰이자 변화다. 나 또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운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편이 가장 정확한 답일 성싶다. 친절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통찰력 있는 어머니가 일찍부터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보고 아들을 잘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권하고, 부추기고 되려 욕망한다. 결과와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도 사이코패스로 자라나게 만들어 버리는 이런 환경에서 유일한 희망은 부모와 가정의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이다. 각각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온전하게 사랑하며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자 기여인지 꼭 알았으면 한다. 진심으로 말이다. 


TED 강연 Link

매거진의 이전글 필요와 욕망의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