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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Nov 28. 2019

자유 교육,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영국의 서머힐 학교로부터 배우기


글을 시작하며  


나는 현재 버즈빌에서 조직문화와 인사(HR)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대략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아이들과 청소년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심마니스쿨'이라는 작은 기업을 창업해서 기존에 없던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해 보기도 하고,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도 해보고, 대안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일반 학교에서 기업가 정신과 창업, 그리고 진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나에겐 나름대로의 '교육관'이 만들어졌었는데, 당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교 중 하나가 영국의 서머힐 학교(Summerhill School)다. 지금은 기업에 있다 보니 당시 기억이 아련한데, 오랜만에 다시 책을 읽다 보니 좌충우돌하던 기억들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리고 그때와는 다른 생각이나 감정도 생겨난다. 앞에선 책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뒤에선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고 싶어서 노트북을 편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ummerhill_School

서머힐에 대하여  


1) 서머힐의 사상

서머힐은 '실험학교'가 아니라, 자유가 어떻게 실현 되는지를 실제로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증명학교'다. 교장인 A.S.닐이 처음 서머힐을 시작했을 때 가장 중요한 생각은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려 하지 말고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추자'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악한 존재가 아니라 선한 존재라는 가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서머힐은 모든 규율과 명령, 간섭, 도덕 교육, 그리고 종교 교육을 없앴다.  "자유로운 아이들은 쉽게 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른들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고 믿었다. 


2) 전체 회의와 자치

서머힐은 민주적 구조를 갖춘 자치 학교다. 단체 생활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매주 토요일 밤에 열리는 전체회의의 투표를 통해서 결정된다. 전체회의에서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교직원들이 어떤 의견을 가지는지에 대해선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어른들의 역할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바깥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다. 서머힐에서는 규칙을 위반한 학생들이 공동체의 권위에 반항하거나 증오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소수 자들도 다수의 판결을 잘 받아들인다. 이러한 공동체 생활은 서머힐의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 물론 '개인과 공동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고 말썽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힐 학생들은 스스로 이끄는 자치 활동을 통해서 공동체를 배워가고 있다.  


3) 놀이와 일  

서머힐은 놀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머힐에서 어린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며 공상과 실제를 넘나 든다. 어른들은 많은 교실과 값비싼 교재를 갖춘 커다란 도시 학교를 세우지만,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서머힐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믿는다. 외부 권위의 강제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서머힐에선 의무적으로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외부의 강요는 잘못이라고 판단한다. 인생관이 올바르게 정립된다면, 직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4) 문제를 다루는 방법

서머힐에서 문제 아이들은 스스로를 다스린다. 왜냐하면 모든 범죄는 사랑의 부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서머힐은 아무리 반사회적인 아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는 법과 질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자유로워지게 되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고 믿는다. 학교에선 도둑질, 폭력, 욕설이 종종 일어나긴 하지만, 닐을 비롯한 어른들은 아이들 편에 서려고 노력했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나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를 위해서 아이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하며 개인 상담도 많이 나누었다.


5) 서머힐 교육의 본질 

서머힐에서 교사는 전통적 교사로 분류되기를 거부한다. 기존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아이들의 성격을 틀에 맞춰 찍어내고 지도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다시 말해 명령하고 상벌을 내리는 존재를 말한다. 닐은 스스로를 인간성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이면 충분하며, 나머지 필요한 것들은 공구, 찰흙, 운동, 극장, 그림, 자유 등이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지내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공부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배움을 강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6) 학교와 가정  

서머힐 졸업생을 연구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가정이다. 학부모들은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자기 자식들을 자유롭게 키우는 부모가 학교도 그렇게 해주기를 원하는 경우와, 가정에서 아이가 잘못되었기에 학교가 그 상처를 치유해줄 거라고 믿는 경우다. 그런 경우, 서머힐은 늘 문제 아이들을 갖다 버리는 곳이지만 서머힐은 기적을 일으키는 곳은 아니다. 자유라는 방법은 대부분의 것을, 특히 12세 아래 아이들에게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모든 것을 치료할 수는 없다.  


7) 공교육과 서머힐 

모든 학교는 교육부의 통제 아래 있다. 서머힐도 마찬가지며, 장학관들은 교내 시설과 수업을 감사한다. '제대로 된 학교'로 인정되기 위해선 감사를 받은 뒤 승인을 요청해야 하지만, 닐은 한 번도 승인을 요청한 적이 없다. 그것은 높은 학비의 부담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매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교육은 내면의 본성에 따라서 이뤄져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소극적인 구경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한 개척 정신을 갖고, 조직화되지 않고자 노력한다면 서머힐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출처 http://www.summerhillschool.co.uk

떠오르는 나의 생각


1) 서머힐의 교육관은 무엇일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2년에 서머힐을 읽었다. 그때는 대안 교육에 관심이 많을 때라서, 책의 모든 말이 이상적이고 옳은 것처럼 보였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 동안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전반적인 교육의 흐름을 알 수 있었고, 특히 나의 관점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서머힐 학교도 다소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서머힐 교육관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아동 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닐이 서머힐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생각은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려 하지 말고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추자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명확한 관점 위에서 서머힐이 설립 되었고 그에 따라서 학교의 세부 사항이 결정되었음 알 수 있다. (규율을 아이들이 정하고, 자치 활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체험 위주의 교육 내용을 강조하는 등)  


이를 서양의 교육 사상가로 비교해 보자면, 우선 소크라테스(Socrates)가 떠올랐다. 교육은 영혼을 돌보는 일이고,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관점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스승은 답을 주는 존재가 아닌 질문을 던지는 존재여야 한다고 하는데, 서머힐의 교사 역할이나 학교의 자치 활동도 그것에 가까웠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루소(J.J. Rousseau)다. '자연은 선하고 사회는 악하다'는 명제를 봐도 그렇듯, 루소는 아동의 내적 자연성을 믿었고 그래서 최대한 소극적인 교육관을 펼친다. 독서를 금지하고 감각적 교육을 중시하는 것도 서머힐의 교육 내용과 아주 유사했다. 

서재에 붙잡아 두지 말고 목공실에 있게 하라. 그의 손이 철학자가 되게 하라.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존 듀이(John Dewey)다. 존 듀이는 결국 '학교는 작은 사회이고, 그를 통해서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서머힐의 자치 활동은 이러한 목적에 잘 부합한다. 무언가를 자유롭게 하도록 실험할 권한은 충분히 주되, 그 이후에 자치 활동을 통해서 규율을 만들어나가고, 또 반성적 사고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Learning by doing' 관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에 다른 교육자들의 관점도 얼핏 보이지만, 서머힐을 이루는 주된 기둥은 소크라테스, 루소, 듀이가 아닐까 싶다. 모두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교육자이자 사상가들이기도 하다.  


2) 서머힐의 강점은 무엇일까? 

'사상은 시대가 잉태한다'는 말처럼 학교 역시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이 삶과 교육이, 개인과 공동체가 분리된 세상, 그리고 학생들을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교육에서 서머힐 학교는 분명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아이들의 교육을 '입시와 출세'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풍토에선 더욱 그렇다. 유치원 시기부터 온갖 사교육이 시작되고, 심지어 가장 재미있어야 할 체육과 음악, 미술 등의 예체능 활동 마저도 사라지고 있는데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욱 서머힐 교육 방침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서머힐의 활동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보이는 것은 '자치 활동'이다. 성숙한 민주사회가 되기 위해선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크고 작은 갈등을 경험하고 해결해보는 것이 중요한데, 서머힐은 그러한 철학에 부합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선생님의 자세인데, 아이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정해진 규칙을 기꺼이 따르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또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거나 상벌을 내리는 존재가 아닌,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태도는 현대의 교사들의 가장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한다. 결국 아이들은 교육 내용이 아닌, 교사들의 태도와 모습을 통해서 세상의 일부를 경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은 어른다운 어른, 교사다운 교사를 보고 자랄 권리가 있다.  


3) 서머힐의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 

하지만, 서머힐에 아쉬운 점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 부모가 되고, 대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지금은 꽤 많은 아쉬운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아동 중심 교육' 그 자체에 대한 반론이다. 개인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은, 아동과 교사 그리고 지식,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이자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80-90년대처럼 교사가 모든 것을 이끌어서도, 지금의 인터넷 강의처럼 교육 내용이 모든 것을 이끌어서도 안 되지만, 서머힐 학교처럼 아이들이 모든 것을 이끌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선함과 가능성을 그대로 믿는 것은 중요하지만, 욕구와 필요를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을 거라고 그저 믿어버리는 것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며, 특히 청소년기에 분비되는 호르몬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더욱 불안하고, 무언가에 의지하게 만든다. 그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위임 만이 능사는 아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이 있는데,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적절하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쉽게 만족하는 법이 없다. 비교적 더 충동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것이 좋은 부모일까? 그렇지 않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적절하게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균형 있게 제공하는 것이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균형적 관점의 부재가 가장 아쉬웠다. 자유는 만사가 아니기에.  


또 하나 아쉬운 것은 미래의 세상과 직업에 대한 관점이다. 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미래이기에, 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제공과 숙고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의 시기를 최대한 즐겁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변화와 너무 동떨어지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서머힐은 행복하기만 한다면 어떤 직업을 갖든 상관없다고 말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앞으로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특히 삶이 지나치게 궁핍해지면 전반적 행복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강제될 수 없고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하겠지만, 학교라면 적어도 그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사실 학교가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가정교육의 중요성'이다. 닐도 인정한 부분이지만, 서머힐은 기적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12세 이하 아이들에겐 서머힐의 교육이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교육의 중추는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며, 아무리 교사들이 아이들을 사랑과 존경으로 대한다고 하더라도 가정에서도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분리감과 괴리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서머힐 학교를 떠나 모든 학교가 갖는 한계이다. 다만, 서머힐은 교육을 통한 삶의 회복을 강조하는 입장이기에 그러한 한계가 더 크게 다가온다. 안타깝지만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4) 한국에서의 서머힐, 가능할까? 

앞서 많은 비판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머힐과 같은 정신을 가진 기관과 학교가 세상에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 한국에서는 다양한 대안학교가 실험되고 있고, 그 이전 단계에서는 '공동 육아'가 그나마 자유학교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가족이 다니고 있는 '성미산 어린이집'도 비슷한 철학을 지향하는 공동 육아의 형태를 갖고 있다. 모든 운영은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 민주적이고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교사들은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데 앞장서기 보다는 자유 놀이를 전제로 한 '소극적 개입'을 진행 중이다. 최대한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관찰하고 적절하게 개입한다. 기존 방식에 익숙한 누군가가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욱 어렵고 힘든 지도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른들부터 자치 활동이나 회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고,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갈등도 많다. 새롭게 들어온 가족과 기존에 있었던 가족, 선생님과 부모, 아이들 간의 갈등 등. 그러한 복잡한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조금은 더 잘 키워보자는 목적' 하나로 뭉쳐서 꽤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다. 정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론 앞으로 한국에 서머힐 학교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생들이 아닌 부모들이 학교에 모이고, 찾아와야 한다. 부모들의 관계가 부재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관계가 쉽게 나아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공동체의 갈등을 경험하고 부딪치고 배워야 한다. 그렇게 갈등과 조율이 켜켜이 쌓여서 하나의 문화가 될 때, 한국에서의 서머힐 학교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위해서 그러한 실험이 꼭 등장하길 기대한다. 나 역시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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