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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Nov 22. 2020

내가 공동육아를 선택한 이유

성미산 어린이집에 온 지 3년이 지나간다.

공동육아의 좋은 점

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성미산 어린이집의 공동육아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열정을 다해 뿌리를 다져주신 어린이집 초기 선배님들이나, 훨씬 더 애정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에 비교하면 날라리 조합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만의 방식으로 함께하고 있다. "엄마~"만 찾던 애기는 벌써 6살 소년이 되었고, 나도 어느덧 3년 차 고인 물 조합원이 되었다. 내가 처음 공동육아를 선택한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는 가까워서. 성미산 마을처럼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사는 망원동은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공동 육아는 일상 깊이 침투하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가까우니까


사실 거리보다 중요한 이유는 '육아에 대한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관계'와 '놀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극받고, 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친구들과 맺는 관계를 넘어, 선생님 그리고 부모들과 맺는 관계를 포괄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수직적인 사회이지만, 공동육아는 수평 관계를 지향한다. 선생님, 부모 할 것 없이 모두가 서로의 '별칭'을 부르고 평어를 쓴다.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또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으로 모두 함께 서로를 돕는다. 그 관계를 충분히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놀이'다. 개인적으로는 잘 노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놀이는 생각보다 고도의 기술이다. 우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야 하고, 규칙을 정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때 필요하다면 친구들을 설득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내가 더 재미있는 놀이를 할 테니, 따라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규칙을 어기는 친구가 있을 때 적절히 대응해야 하고, 갈등이 생기면 해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약간의 비약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놀이를 잘하는 사람이 리더로서의 역할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규칙을 만들고, 소통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기운을 북돋는 일이니까. 어쨌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 덕분에 재원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놀고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공동육아의 의무

지금까지 들어보면, 공동육아가 참 이상적인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다. 누릴 수 있는 권리만큼이나 의무(매운맛)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조합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숙제는 아이가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부모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아이의 성장과 자기 자신을 분리한다. 하지만, 모든 조직이 리더의 크기를 넘어설 수 없듯, 아이 또한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나 변화 없이, 어린이집을 보냈으니 모든 것이 알아서 되겠지라는 생각은 헛된 바람에 가깝다. 공동육아를 선택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스스로 얼마나 헌신할 수 있을지, 내가 진정으로 뜻이 있는지 묻고 또 되묻게 된다. 모든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의무를 다하는 자만이 공동 육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조합원에겐 주기별 청소를 비롯하여 각종 이벤트, 소위원회 활동, 방 모임, 교육 등 다양한 의무가 주어진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 의무는 더 늘어난다. 또한 조합 기간 중 1년 동안은 소위원회 '이사' 혹은 '이사장'을 맡게 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나는 작년에 교육 이사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공동체의 각종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1년 동안 소위원회를 이끌고, 신입 조합원들의 적응도 돌봐야 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작년 하반기에는 대학원에 입학하기까지 했으니, 맡아야 하는 역할들이 넘칠 지경이었다. 팀장으로서, 학생으로서, 아빠로서 그리고 이사로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양한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살았어야 했다. 몇 개월을 그렇게 살면서 "공동육아는 아이들에게 천국, 부모들에게 지옥이다."는 말이 괜히 생각난 것이 아니다. 정말 쉽지 않았다. 



공동육아에서 배운 것

상당히 바쁜 나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육아 고유의 회의 방식들, 관계 중심의 사고, 오랜 토론과 논의가 다른 역할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논의해야 해야 하는 주제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빠른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과 설득의 공동육아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부모들의 관계가 해결되면, 터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이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부족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공동육아에서의 배움이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했고 나 또한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장은 고통을 동반한다.


결국, 공동육아의 부모들은 자신이 아닌 자식들을 위해서 어린이집을 찾는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물음의 종착지가 자신의 변화라는 것이다. 결국 부모의 변화, 그리고 부모들과의 관계가 공동 육아의 핵심임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을 마주하며, 공동체적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단순한 부모 역할을 넘어,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부캐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이들에 비해선 아주 짧고 얕게 경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이 귀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전국에 있는 모든 공동육아 조합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PS: 성미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2021년 등원 아동을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보실 수 있으며, 저에게 메시지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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