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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Feb 16. 2020

대서양을 향한 이슬람과 포르투갈의 도전

대서양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것


한길사 <대서양 문명사>는 분명 역사 서적에 가깝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떠오르는 것은 비단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표준과 플랫폼, 다양성과 낯선 것들의 조우, 글로벌 경영의 노하우, 사회의 개방성과 지식의 이동, 종교와 합리성, 민주주의의 발전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나에겐 완전히 새로운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또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특히, 제국과 돈, 종교가 왜 인류가 공유하는 스토리가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심화 버전으로 강력 추천한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브런치 독자분들께 책 한권을 모두 읽어보시길 권하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핵심적 내용을 발췌하고 요약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하단에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인다. 내용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몇 차례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다. 역사와 스타트업에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주시길 바란다. (대서양 시대라는 게임을 재미있게 한 분들께도 권하고 싶다. 하하하)


1장. 이슬람 & 포르투갈

2장. 에스파냐

3장. 네덜란드

4장. 프랑스 & 영국

5장. 미국 & 대서양적 표준의 위기와 확장




서문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여러 표준들 간의 교류가 대서양으로 확대되면서 하나의 보편성을 창출해내는 동안 비서구 세계 내의 여러 국가들은 자신들이 보편성으로 간주하고 있던 지역적 특수성 안에 안주하고 있었다. 76      

→ 왜 서양과 달리, 동양은 표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을까? 진시황 때문이 아닐까? 중국 대륙에서 표준을 다투던 시절은 춘추전국시대다. 그 이후에는 중국 대 이민족(중국 입장에서)의 다툼이 역사의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우리와 일본은 피해국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다툼하기엔 너무나 큰 나라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진시황을 통해 동양은 '중국'이라는 표준이 정립되었고, 그로부터 벗어나기는 너무나 어려웠던게 아닐까 싶다. 고려까지만 하더라도 그나마 먼 나라와도 교류하며 소통이 괜찮았는데, 조선부턴 성리학을 바탕으로 사상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중국에 갇힌게 아닐까. (그나마 문자적으로 독립적 표준을 마련했던, 세종 대왕을 제외하곤) 중국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자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국의 세계사를 가지고 있을 때, 비로서 그 나라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73 

 → 이는 비단 국가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속한다. 자서전을 쓴다고 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쓰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은 나와 세상이 어떻게 교류했는지, 내 삶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것이 개인의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국가도 마찬가지다.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국가들을 살펴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그들은 왜 거시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었는가?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대서양을 향한 이슬람적 표준의 확장과 좌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 중 한명, 이븐 바투타


서로마 제국의 쇠망 이후, 지중해를 장악했던 것은 활발한 중계무역을 펼친 이슬람 뱃사람이었다. 마호메트가 상인 출신이었던 것은 이슬람적 표준의 형성과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이븐 바투타를 비롯한 여행가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고 있었고, 거대한 교역로를 개척했다. 반면, 이미 충분한 물자와 이익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서양 진출에 대한 자극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99 

 → 다시 말해, 궁해야 혁신을 시도한다. 이슬람은 서양과 동양을 잇는 과정을 통해서 충분한 부가수익을 창출했고, 그로 인해서 되려 항해술의 발달은 지중해에 그치고 말았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이미 충분히 영업 이익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큰 사업은 아무래도 주저하기 쉽다. 그것이 미래에 발목을 잡는 사실을 미리 예측하고 변화하기란 쉽지 않다.


이슬람은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와 그리스의 문명적 유산들을 흡수하고 용해했다. 서유럽에서 그리스의 유산이 기독교의 중압 아래 신음하고 있을 무렵, 이슬람은 이들의 유산을 보존해주었다. 108 

    → 13세기 리베리아 반도는 가장 많은 대학이 설립된 곳이었다. 실제로 포르투칼의 레콩키스타를 통해, 반도 있던 이슬람의 사회적 인프라와 지식 구조, 자본은 모두 포르투칼과 에스파냐가 대서양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아마도, 지금의 유럽이 아니라 이슬람이 세계를 재패했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지식들을 그렇게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같다. 지식의 통합과 이동은 사실상 힘과 권력을 좌우한다.


1095년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며 서구-기독교와 이슬람은 세계적 표준을 다투었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유럽은 이렇다할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향료, 도자기 등 동방 물자에 대한 유럽의 기호는 높아졌고, 유럽 내부 도시(특히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들이 발전했으며, 이슬람과의 무역을 촉진시켰다. 또한 전쟁을 통해 종교적 표준에 의한 단합을 과시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타자를 통해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유럽이 대서양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에 불을 붙인다. 일단 향신료가 들어간 고기를 먹은 유럽 사람들은 그것에 바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 십자군 원정은 '전쟁'이 일으키는 부수적 효과를 잘 표현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반드시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나쁜 의도가 꼭 나쁜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그 자체만 본다면 종교의 맹목성이나 소년병의 희생 등 비난 할 것이 너무 많지만, 결국 그 결과 르네상스가 촉진되고,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말았던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이것이 역사의 역설이 아닐까.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문명사적 의미를 지니는 대사건이다. 이로 인해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지중해 항로의 주요 거점을 상실하고 말았다. ... 결국 이탈리아를 떠나 포르투칼과 에스파냐로 이주한 사람들의 눈은 더 이상 지중해라는 좁은 바다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 거슬러 내려가면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슬람이라는 강력한 제국을 상대로 유럽은 늘 고전한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그들은 시야를 대서양으로 돌린다. 그것이 신의 한수가 된다. 이슬람이라는 강대한 적과 싸우면서 키워왔던 문명의 힘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약한 문명권을 손쉽게 복속시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세계적 판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경쟁은 유익하다.


포르투갈의 대서양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연 항해왕, 엔리케 왕자


포르투갈인은 대서양 항해를 통해서 근대적 해양제국을 건설헀던 선구자였다. 해양왕 엔리케 왕자는 탐험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공급할 대규모 싱크 탱크를 구상하였다. 각지의 우수한 조선기사, 항해기술자, 세공업자, 탐험가, 지리학자, 천문학자 등이 모여들어 연구, 조사, 항해 등에 관한 지식을 나누었다. 한 장소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벌이게 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가장 확실하게 정보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p.148 

    → 지식이 정복을 낳고, 정복은 정복자를 중심으로 지식을 체계화하고, 지식은 다시 정복을 낳는다. 다시 말해, 정복의 시작은 지식이다. 포르투칼의 무엇이 '최첨단의 지식'이 모이게 한 것일까? 첫 번째는 리더다. 선명한 비전을 가진 엔리케 왕자 덕분에, 모두 협동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관용이다. 이 당시 포르투칼은 각기 다른 인종과 종교가 모여서 문명의 칵테일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성과 지식의 상관관계는 아주 중요한데, 대서양적 표준이 여러번 바뀌는 동안 한번도 변하지 않는 원칙에 가깝다. "우리는 외부에 얼마나 열려있는가?" 라는 척도는 곧 그 사회가 얼마나 앞서가는지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1140년대 이래로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이슬람 세계 건너편에 존재하는 상상 속의 기독교 군주 프레스터 존에 대한 신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론'을 통해 얻어진 프레스터 존에 관한 허황된 지식은 엔리케의 정복욕을 자극했다. 막대한 황금에 대한 열망은 대서양 사업에서의 주요한 동기였다. 

 → 앞서 십자군 전쟁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의미와 명분'만으로는 모험에 나서지 않는다. '의미와 실리'가 그럴듯하게 어우려질 때, 그때서야 비전은 구체화되고, 손과 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프레스터 존이라는 환상이 마르코 폴로의 여행으로 가시화되고, 엔리케 왕자에 의해 현실화 되었던 것처럼.


포르투갈의 대서양 항로 개척은 카레이라 다 인디아, 즉 인도 항로의 개척이라는 결실을 보게 되었다. ... 이름의 항로는 100년 이상 국가기밀로 취급되며 포르투칼의 국부 증진에 기여했다. 

 → High risk, high return. 이슬람이라는 강적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를 크게 돌아가는 이 전략은 수 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은 15세기 말이 인도 항로를, 16세기 초에 중국과 일본에까지 도달함으로서 유럽 어느 나라도 쫓아올 수 없는 독립적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또한 포르투갈은 그 과장에서 예상치 못한 수익을 얻게 되는데, 바로 노예무역이다. 매년 7천명이 넘는 흑인 노예가 흘러들어왔고, 대서양 너머로 팔려나가서 강제노역에 종사해야만 했다. 이는 아프리카에 엄청난 피해와 전염병으로 인한 인구저하를 가져오게 되었다. 대서양 진출의 씁쓸한 면이다. 




지금 우리에게 던져야 할 질문


1. 파괴적 혁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슬람의 거대한 힘에 가로막혀 대서양으로 눈을 돌리게 된 엔리케 왕자와 스타트업 CEO들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여정에 기꺼이 몸을 던진 선원들의 마음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큰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성장 그리고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에 따르면, 파괴적 혁신이란 기존의 시장과 가치 네트워크를 교란하고, 기존의 시장 참여자들을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당시의 모험가와 상인, 그리고 군주들이 꿈꾼 것이고 지금의 기업가들이 바라는 것이다. 물론 대서양 시대에는 지리와 교역로의 발견이 중요했고,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은 고객의 니즈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준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바가 없다.



2. 당대 최고의 지식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대서양 시대 각각의 시점마다 표준을 지배했던 국가들이 '지식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직 포르투갈까지만 다뤘지만, 그 원칙은 앞으로도 지속된다. 특히 엔리케 왕자에 의해서 대규모 싱크 탱크가 조성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선진 지식이 새로운 배를 만들고, 항해 지도를 만들고, 결국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른 세력이 넘볼 수 없는 압도적 선점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최고의 지식이 모이는 두 번째 조건은 '관용'이다. 신앙이 모든 것을 압도하던 중세 암흑기를 지나면서, 세계사적으로 가장 빛나는 문명을 가졌던 곳은 유럽의 바로 옆 이슬람이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와 그리스의 문명적 유산들을 흡수하고 용해하며 독창적 사상을 전개했다. 결국 십자군 을 통해서 이슬람에서 보관 중이던 그리스의 지식들이 역으로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다. 결국, 관용과 다양성 없이는 지식도 없고, 나아가 힘도 없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많이 강조하는데, 우리의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고 전달되는지, 우리는 얼마나 편협하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


3. 강력한 비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앞서 살펴보았듯, 궁하면 통하듯 절박함이 비전을 만든다. 하지만 강력한 비전이 되기 위해선 충족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의미(명분)와 실리다. 강력한 기독교적 맥락에서 '상상 속 기독교 군주 프레스터 존'에 대한 신화는 그들에게 커다란 동기를 불어넣었다. 프레스터 존을 찾아내서 동맹을 체결하고, 무슬림을 공격하는 상상만으로도 그들은 엄청나게 고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몇몇 여행가들의 여행기를 통해서 '황금과 향신료의 나라 지팡구'를 알게 된 것은 행동의 발화점이 되었다. "이 섬나라의 국왕이 사는 궁전 하나는 그야말로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 갖가지 향료도 역시 다량으로 산출되며, 검은 후추는 물론 눈같이 흰 후추도 풍부하다"와 같은 부정확한(?) 정보는 엔리케의 정복욕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늘 그렇듯, 인간은 의미와 실리를 쫓는 존재이지 않은가? 이는 스타트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겠다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세상에 발자취 하나쯤은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온다. 하지만 명분만으로 이 사람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건 한계가 있다. 적절한 실리적 이득과 의미는 함께해야 한다. 그것이 균형감있게 배합되고, 시의적절하게 커뮤니케이션될 때 리더의 비전은 힘을 발휘하는게 아닐까. 그 비전과 행동의 힘으로 세상이 더 밝아지는게 아닐까.  



더 많은 수의 요새를 가질수록 너희의 힘은 약해질 것이다. 모든 너희의 힘을 바다에 두라. 바스코 다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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