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정욱 Mar 17. 2020

내 인생의 첫번째 재택근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짧은 회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시 멈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얼마 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유럽의 확진자는 날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국내는 다행히 어느 정도 확진자 수가 감소 추세에 있는데, 많은 분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우울하고 답답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아마 가장 힘든 분들은 코로나에 따라 생계가 달린 분들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만 가능한 비즈니스는 대부분 일시 멈춤 되어버렸다. 나 역시 2015년 메르스가 한창 유행일 때 비슷한 경험이 있다. 1인 기업으로서 강의와 퍼실리테이션을 주로 하고 있었기에, 취소되거나 연기된 건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에 꽤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메르스의 최종 확진자가 186명이었으니,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주위에도 많은 강사님들과 교육 업체들이 있는데 모쪼록 이 힘든 시기가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의 상황을 장담할 수 없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미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하는 방식에 대한 관점을 넓혀주었고, 재택근무에 대한 대규모 실험이 진행되도록 강제했다. 일부 기업들은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사례도 있고, 그 반대도 목격된다. 개인적으로 재택근무에 관심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해본 것은 처음이라 흥미롭게 임하고 있고, 또 지켜보고 있다. 진행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지금의 단편적 기억을 쉽게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1. 물리적 제약에 대하여

버즈빌은 2월 25일(화)부터 지금까지 재택근무를 진행 중이다. 사실, 기존에 재택근무를 해본 적이 없던 상황이라서, 의사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업무를 전환하는 것은 공지 하나면 충분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갖춰놓은 것은 다행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물리적인 제약(노트북이 아닌 PC를 사용하는 경우)이 있거나 네트워크 이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소문으로 듣기로 어떤 회사는 택배로 PC와 모니터를 각자의 집에 보내주기도 했다는데,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노트북이 아닌 회사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업무나 대면이 필요한 경우에는 재택근무로의 전환이 여전히 쉽지 않을 것 같다.


2. 그라운드 룰 함께 만들기

원활한 재택근무를 위해선 몇 가지 그라운드 룰이 필요했다. 버즈빌 역시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계속 논의했고,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서 그라운드 룰을 수립해 나갔다. 마치 달리는 차를 동시에 수리해 나가듯, 재택근무가 진행됨과 동시에 함께 만들어 나간 상황이다. 첫 번째 그라운드 룰은 '화상 전화'를 할 때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얼굴을 보면서 하자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큰 염려였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잘 지켜 주셨다. 그 외에도 이슈가 발생하면 바로 전화를 한다거나, 가급적 개인 메시지가 아닌 그룹 채널을 이용하자는 등의 '커뮤니케이션' 관련한 그라운드 룰이 많았다. 들어오는 의견을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그라운드 룰을 변경하고 다듬어 나간 것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라운드 룰은 계속 업데이트 중


3. 드러나는 조직문화

얼마 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회사에서 순환적 재택근무를 시행 중인데, 그 회사의 임원은 특이하게도 본인은 화면을 켜지 않고, 그 외에 모든 사람은 화면을 켜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황당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통해, 각 기업들의 조직문화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회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 왔는지, 얼마나 구성원들을 믿고 신뢰했는지, 직원들은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등. 버즈빌은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자발적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 어떤 점심을 먹는지 슬랙 채널에서 공유하기도 하고, 자발적인 콘퍼런스 콜을 통해 재택근무에 대한 회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4. 장기화 시나리오

(물론 외적 환경에 어려워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론 쉽지 않은 상황을 지나고 있지만) 현재까지 버즈빌은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고, 심지어 높아졌다는 목소리도 많다. 아주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허나, 재택근무가 계속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선 몇 가지 염려도 있다. 특히 신규 입사자의 경우에 아무래도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데 재택근무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또한 다양한 스터디 그룹이나 동아리 활동, 혹은 회식들이 계속 멈추게 되는 것도 아쉽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이제 슬슬 답답함과 심심함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다. 캠퍼스 리쿠르팅을 비롯한 외부 이벤트도 미뤄지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5.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조직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결혼 이후 지난 한 달처럼 집에 오래 붙어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집에서 먹는 경우는 살면서 거의 없었는데 식비와 집안일이 크게 늘어난 듯한 느낌이 든다. 더불어서 아내에게 미안한 기분도. 6살짜리 재원이도 여전히 등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이 없다 보니, 일이 끝나면 주말 모드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매일 저녁마다 밥 먹고, 책 보고, 윷놀이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지난 설날부터 3달째 윷놀이에 빠졌다) 이 또한 재원이에겐 의미 있는 추억이 될 듯하다. 나가지 못해 여전히 답답하긴 하지만.   


이젠 윳판만 봐도 무섭다


6. 독서량과 운동량 급감

개인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시간이 그나마 유일한 개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시간도 대부분 그때인데, 재택근무 이후에 독서량이 엄청나게 급감했다. 사실상 개인적으론 가장 큰 불만사항이기도 하다. 물론 저녁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책을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다 보니 집에선 쉽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거들 뿐) 걷는 시간도 터무니없이 줄어들어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 재택근무에 맞춰 루틴을 잘 설정하신 분들에 비하면, 개인적인 시간과 할 일들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  


7. 이번 사건으로 내가 배운 것

외부 요인과 내부 요인으로 구분해 보자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분명히 외부 요인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매니징하고 대응할 것인지는 분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버즈빌의 대응은 기민 했고, 재택근무를 함께 만들어간 경험 역시 좋았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소통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자발적인 온라인 모임으로 대응해 나고 함께 노력한 것은 역시 멋졌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사태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팀과 문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팀원들과 소통하고 매니징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런 시기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고민하고 또 배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서로 연결된, 일상의 행복을 어서 느낄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OKR 도입 후, 조직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