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R을 운영하며, 검토해야 할 질문들
작년, OKR과 관련하여 몇 번의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 실인컨이나 애자일 코리아 컨퍼런스를 통해서 OKR 도입에 앞서 미리 고민해야 하는 사항들과 실제 사례를 공유했다. 개인적인 결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명확하다. "OKR을 단순한 Tool의 입장에서 섣부르게 도입하려고 하지 마시고, 가급적이면 CEO를 비롯한 C-level에서 1-2분기 정도 먼저 운영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최근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Agile도 그렇지만, OKR Practice의 도입은 일견 단순해 보인다. 개인별로 목표와 핵심 지표를 세우고,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분기별로 리뷰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 운영하다 보면 그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OKR 속에 감춰진 철학과 배경을 이행하기 위해선,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조직문화의 변화와 맥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도 전사적인 OKR 도입을 추진했었고, 버즈빌 입사 이후에는 일부 부서에서 활용되던 OKR을 전사 차원으로 확대하고, 아쉬운 점을 개선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한지 지금 거의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이제는 안정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버즈빌에 맞춰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비교적 잘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최근에는 '시각화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의 전체적인 방향과 팀의 Align이 잘 되는지 모르겠다.' '높은 시도가 장려되지만, 달성도가 낮다 보니 회의감이 든다' 등의 의견을 받았다. 구성원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여전히 어질어질하다.
"완벽한 성공 사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실전에서의 적용은 어렵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불만이 나오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가끔 컨퍼런스를 통해서 인사 담당자들을 만나면, 그렇게 눈빛이 잘 통할 수가 없다. 동병상련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간혹 국내 기업의 OKR 성공 사례는 없다고(혹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분들도 만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버즈빌만 하더라도, 조직의 운영 체계로 충분히 값지게 활용되고 있고, 주위에서도 의미 있는 사례를 많이 만난다. 그저 하나의 툴이 기업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하다는 것이지,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OKR의 도입이 성공적이라고 판단되어야 할 시점은 한참 뒤라고 믿는다. OKR로 인해서 조직문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드라이브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기에.
과거의 글에서 OKR 도입 전에 검토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했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도입을 위해선 CEO의 헌신이 필요하고, 도전을 촉진하기 위해선 평가제도와의 Align이 중요하며, 소통을 위해선 1:1 미팅을 통해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Objective와 Key Results 사이에서, 그리고 Tob-down과 Bottom-up 사이에서 적절한 긴장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실제로 운영 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리고 필자는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 나누고자 한다. 실제로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나 역시도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뒤를 다시 돌아보면서 새롭게 배우게 것들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OKR은 단기전이 아니다. 한국시리즈가 아니라, 정규 시즌을 운영하듯 전체적인 과정을 매니징 해야 한다. 어쩌면 리빌딩에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점차 조직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아가 무의식적인 습관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OKR이 살아 움직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첫 번째 던져야 할 질문은 "OKR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프로세스가 있는가?"이다. OKR과 관련하여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존 도어의 정의가 마음에 든다. "조직 전체가 동일한 사안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들어주는 경영 도구" 1년 반 전, 버즈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 역시 '과감한 우선순위 설정'이었다. 몇 년 동안 OKR을 운영해 온 조직이고, 모두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 설정은 쉽지 않았다. 이것은 비단 버즈빌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을 과감하게 결정하고, 즉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조직은 의외로 드물다. 조직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OKR의 정수다. 버즈빌은 이러한 어려움을 '미션-비전 재설정'과 '분기별 리더 워크숍'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내외부 상황을 검토하여 잠금화면 중심에서 Rewarded Ad Platform으로서 비전을 변화시켰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거쳤다. 또한 리더 워크숍을 통해 분기별로 리뷰하고 비전에 Align 된 OKR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말이 쉽지, 그것은 정말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몇 년간 진행해서 겨우 손에 들어온 제휴를 한 순간에 멈춰야 하고, 세상에 없던 Product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OKR은 단지 그것을 거들뿐이다.
두 번째 던져야 할 질문은 "OKR에 최적화해서 조직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는가?"이다. 조직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조직도 있고,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규모로 단단하게 다져나가는 조직도 있다. 버즈빌 조직 구조도 크게 2번에 걸쳐서 변화했다. 첫 번째는 '기능 Function'에서 '매트릭스 조직 Matrix'으로의 변화인데, 특히 '목적 조직 Chapter / Mission team'에서 OKR의 진가가 발휘된다. 엄청난 충돌과 갈등을 동반하고 말이다. 기존의 기능 중심의 단순한 리더십 체계와 비교했을 때, 다양한 Product Line이 혼재되고, PM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점에선 OKR의 핵심인 우선순위 설정이나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하고 어렵다. 버즈빌도 많이 노력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더욱 신경 썼어야 했던 분기점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는 '중간 리더' 직책의 도입이다. 최근 수평적 조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김성준 박사님의 <조직문화 통찰>에 잘 나와있듯 정말 중요한 것은 권력 거리다. 직책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는 스타트업도 많은데, OKR을 운영하다 보면 결국 1:1 미팅을 통해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 결과값이나 KPI로 구성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독려하고 보다 총체적 이해를 갖기 위해선 한 명의 리더가 매니징 할 수 있는 인원의 수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고민들을 함께 가져갈 수 있을 때, OKR은 조직과 함께 스며든다.
세 번째 던져야 할 질문은 "OKR을 운영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훈련하고 있는가?"이다. 성과 관리 도구의 도입은 리더십 훈련의 시작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리더십의 해결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그러한 착각을 한다. 벤 호로위츠는 <하드 씽>에서 이렇게 말한다.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동기 부여와 교육뿐이다. 교육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사실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스타트업의 환경에서 리더십을 논한다는 것은 사치스럽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OKR이라는 도구는 리더십 크기만큼 그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떤 전략으로 KR를 지정하고, 이를 팀원의 경력 목표에 맞춰서 할당하고, 주기 별로 적절하게 피드백하는 것. 이 모든 리더십 행위는 복잡하고 생각보다 입체적이다. OKR이라는 도구 하나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전사 Align을 위해선 CEO 자신이 탁월한 리더십 트레이너이자 코치가 되어야 하며, 훈련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버즈빌 또한 리더들을 대상으로 코칭 / 리더십 훈련을 도입했고,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단기간에 변화하긴 쉽지 않지만, 시간과 관심을 쏟을수록 반드시 응답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필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지금부터다. 앞선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전사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조직 구조를 설계하고, 그에 맞춰 리더십을 훈련하면 OKR을 잘 운영하는 것일까? 몇몇 분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가장 염려하고 걱정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바로 OKR을 잘 운영하기 위해선 "빠르게 결론을 내려는 본능"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의 가장 큰 강점인 벤치마킹과 결단력, 일사불란하고 빠른 실행은 역설적이게도 OKR 성공에 있어선 최대의 적이다.
OKR을 잘 운영하기 위해선 그것을 하나의 Practice가 아닌, Mindset 그리고 조직문화의 변화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내가 던졌던 질문들은 그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각 조직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병목 지점이 같을 리 없고, 리더십 스타일이 다른데 어찌 질문이 같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질문은 이것 하나다. "어떻게 해야 우리 조직에서 OKR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계속하는 것이 OKR 운영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Doing Agile을 지향하기보단 Being Agile을 향하자는 말처럼, OKR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 살아있는 Being OKR을 위해선 구성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어떻게 매뉴얼을 만들어서 작성법을 공유할지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꾸준히 발견하고 계속해서 더듬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버즈빌의 사례를 용기 내어 고백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이고 지름길이니 따라하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우리 나름의 고민으로 앞서와 같은 실험을 진행했음을 그저 알릴 뿐이다. 정답이 없는 앞으로의 경영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함께 배워나가는 능력이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OKR 제도는 여전히 초창기 단계이기에, 더 많고 다양한 실험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들이 사례와 경험을 물어보고는 하는데 물론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곤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OKR을 도입한 많은 조직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파이팅이다.
마지막으로 <축적의 시간>에서 이정동 교수님이 말한 내용을 일부 옮긴다. 함께 기억할 만하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창조적 축적을 위한 열린 시간 자세와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새롭고 도전적인 개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이러한 경험을 축적하고자 노력하는 조직과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인센티브 체제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 (...)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항상 정해진 목표를 초기에 초과 달성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시행착오의 과정과 결과를 꼼꼼히 쌓아가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축적된 경험에 관심을 두는 저량 중심의 사고방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