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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Sep 21. 2024

영화 <더 웨일> 리뷰: 죽음 앞에서 직면하는 것들

책 <모든 것은 빛난다>와 함께 


영화 <더 웨일>은 '브랜든 프레이저'의 압도적인 연기로 유명세를 탄 작품으로, 그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소식과 함께 더 주목받았다. 영화를 본 이후에 그의 개인사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울림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었는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데, 종교적 요소가 일부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의 핵심은 '구원'이 아닌 '진실에의 추구' 그리고 '불완전성의 수용'이 아닐까 한다. 간단한 리뷰를 남긴다. 





1. 죽음과 삶, 그 경계에서의 고뇌

영화는 죽음을 앞둔 한 남자, 찰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혼자선 일어설 수도 없는 초고도 비만으로, 몸무게가 거의 272kg에 다다른다. 즉,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예정된 미래가 펼쳐지는데, 앞으로 남은 삶이 일주일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찰리는 너무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고자 한다. 우연히 찰리의 집을 방문한 선교사는 죽음을 앞둔 찰리에게 전도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고, 친구인 리즈는 삶을 포기하려는 선택마저 존중할 만큼 그의 삶과 붙어있다. 찰리를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이 이 영화를 이끈다.   


죽음을 앞두고서, 찰리는 조금씩 자신을 진실하게 마주해 나간다. 자신이 버린 딸을 다시 만나고, 에세이를 지도하던 중, 자신의 학생들에게 "빌어먹을 에세이나 책을 내려놓고, 솔직한 글을 쓰라(Just write ne something honest)"고 강하게 외친다. 이는 마치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자책이자 반성, 회고라고 느껴졌다. 어쩌면 죽음은, 우리 모두가 죽는 순간까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게 아닐까? "지금까지 무엇을 직면하고 있지 않았을까? 회피를 위해 지금 내가 탐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도 함께 던지게 된다. 



2. 압도적 연기와 연출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단연코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단순히 고통과 후회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 특히 "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걸!"이라고 절규하는 찰리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배우와 배역이 완벽히 얼라인 될 때 어떤 호소력이 펼쳐지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연출 역시 매우 연극적인 느낌을 준다.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여서 더욱 그렇다. 이는 마치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는데, 삶의 무게와 그로 인한 비극성을 강조하는 데 성공한다. 다만, 초고도 비만이라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의 버텨냄과 힘겨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정의 과잉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살짝 아쉬웠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3. 미화된 구원이라는 비판

몇몇 대사와 메시지는 공감되었고, 연기를 더할 나위 없었지만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찰리의 선택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더 웨일에 대한 리뷰 중에서 "어떤 책임도 없이 삶의 무게를 남은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도망가는 모습을 비상(飛翔)이라는 이미지로 미화했다"라는 문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반성과 용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 같은 장면으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신으로부터든, 인간으로부터든, 구원은 찰나와 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옳든 그르든, 어쨌든 본인의 선택으로 만든 인생의 결과만큼은 스스로 책임감 있게 완결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앞둔 이가 보여주는 용기는 분명 값지지만, 그것이 마치 자신의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 '타자'를 인식하는 것이 곧, 성숙의 척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4. 함께 보면 좋을 책: 모든 것은 빛난다. 

<더 웨일>을 보고 나서, 다시 들춰본 책이 있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책 <모든 것은 빛난다>이다. 실존주의 철학을 다룬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설 역시 영화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모비딕>이다.  선장 에이헤브는 결연한 의지와 목표의식을 갖고 확실한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에이헤브가 증오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고래를 쫓는다. 그는 "믿을 없는 세상에서 나를 잡아줄 있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싶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비딕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며, 모순되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이자 자연, 혹은 그 너머의 무언가이다. 어쩌면 어느 순간 에이헤브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악마적이고 사악한 우주로 보였던 고래는 그저 본능적이고 의도가 없는 짐승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우린 무언가를 확실하다고 믿을 때, 의심해야 한다. 어쩌면, 더 웨일에서 '확신에 찬 선교사'와 주인공을 대립시킨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과제도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한다.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단락이다. 

표면적 진리들에 대해 스스로를 닫는 내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종료라면 무엇이건 멜빌은 "(그 종교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모든 다신적 진리들을 당신 스스로 발견하도록 놓아둔다. 그런 진리들 속에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모든 즐거움과 슬픔을 맛보도록 하자.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의미를 선사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그 즐거움과 슬픔 속에 만족스럽게 머무르자.



우리는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떠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삶의 끝에서조차 진실하게 자신을 마주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더 웨일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진실한 순간들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며, 나 역시 솔직한 글을 더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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