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의 마인드셋
1.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봤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향하는 상황. 같은 사건을 미사일 기지, 백악관 상황실, 대통령의 시점에서 나누어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 <라쇼몽>이 떠올랐다.
2.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왜 최악의 상황으로 향할까?” 이 영화는 불완전한 시스템과 집단 사고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3. 집단은 왜 더 멍청한 결정을 할까? 대니얼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는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 1과 깊이 사고하는 시스템 2로 나뉜다. 중요한 결정을 위해서는 당연히 시스템 2 사고가 필요하다.
4. 하지만, 영화 속에서 미사일이 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8분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면 사람은 쉽게 '터널 시야'에 빠진다. 평소라면 다양한 관점을 나누며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진다. 불완전한 정보와 불신이 얽혀 파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말이다.
5. 이 모습이 요즘의 급변하는 경영 환경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고객의 니즈는 그에 따라 바뀌고, 경쟁자는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이 미래를 내다보며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AI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할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으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일단 뛰는 일만 남는다.
6. 이렇게 급변하고 복잡한 세상일수록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폭넓게 바라보고 판단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다양한 관점을 품고, 모호함을 유지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특히 HR 담당자에게는 더욱 필수적이다.
7. HR 담당자는 CEO와 경영진의 의도를 이해하고, 구성원에게 공감하며, 조직의 잠재적 리스크를 감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문제를 깊이 분석하기”와 “한 발 떨어져 보기” 두 가지 상반된 역량은 모두 요구된다.
8. HR이라는 전문성도 때로는 방해가 될 수 있다. 데이비드 앱스타인의 책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예측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되려 최고의 예측가들은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독서하는, 뛰어난 협력자였다. 그들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정보를 공유하며, 자신의 생각을 검증이 필요한 가설로 여겼다. 반면 전문가들은 반대되는 증거에 거부감을 보였다.
9. 전문가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평소에 나는 경영, 리더십, 성과관리 책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뒤를 돌아봤을 때, 세상에 대한 관점과 시야를 넓혀준 책들은 오히려 역사, 사회, 정치 분야였다. 예를 들면 WEIRD, 도시의 승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사피엔스 같은 책들이다. HR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세상과 인간을 더 다층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10.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시대일수록, 그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능력도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이런 역할도 AI가 대신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빠른 세상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최선의 대안을 찾고 제안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HR의 본질은 사람과 조직이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돕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