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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타인보다 AI와 대화하기 쉬울까?

<AI 시대, 대화의 기술> 1. 극단의 시대, 대화의 역설

by 강정욱

<나는 솔로>에서 관찰하는 대화의 어려움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지만, 종종 <나는 솔로>를 본다. HR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분석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좋은 교과서다. 참가자들의 말과 표정, 감정의 변화는 실제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의 축소판 같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겁게 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한다. 어느 회차에서 한 남성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메시지는 상대에게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분명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본인 이야기만 했다. 만약 상대 표정을 조금만 더 살폈더라면, 대화를 멈추고 질문을 던졌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화의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다.


서로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사소한 오해를 계기로 마음을 닫고 대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단기간에 빠르게 결론(?)을 내야 하는 <나는 솔로>에서는 이런 일이 더 극적으로 일어난다.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관계의 힘듦, 그중에서도 대화의 어려움을 간접 경험한다. 현실에서도 대화는 쉽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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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대화는 어떻게 변할까?


현실 이야기를 할 때, AI를 빼놓을 수 없다. AI와의 대화는 얼마나 쉽고 즐거운가. 어떤 전문가보다 빠르게 정보를 제공하고, 기분 상하지 않도록 다정한 언어를 사용한다. 덕분에, 심리 상담이나 코칭 분야에서 AI는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우린 더 쉽게 AI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분노하기도 한다. 영화 <Her>처럼, 일본에선 본인이 AI로 만든 캐릭터와 결혼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편안함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AI는 나의 생각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다. 특별히 '반박해 달라'라고 말하지 않는 한, 나의 관심과 성향을 학습하고, 내가 불편해할 말을 피해 간다. 적당히 조언을 주기도 하지만, 내 입장을 강하게 반박하거나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즉,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우주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 때문인지, 최근 업데이트 된 GPT-5는 과거 버전보다 아부나 과도한 칭찬을 줄이도록 설계되었다. 예전보다 대화의 만족도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별거 아닌 생각에도 "훌륭한 질문입니다. 멋진 관점이네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칭찬이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불편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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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시대, 대화의 역설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지옥은 단순히 ‘타인이 싫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시선, 평가, 기대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편함과 긴장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대화 속에서 상대 눈치를 보거나, 말 한마디로 상처받거나, 때론 심리적 충격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더 비싸다. 교통비에 커피값까지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가.


지금의 한국 사회는 대화가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대와 진영 논리가 강화되고,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의견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어려운 이해보다 쉬운 비난을 택한다. 전문성이나 과학적 결론을 의심하고 본인 경험과 감정을 더 중시하는 반지성주의적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의미있는 대화는 더 요원해졌다. 불편한 논쟁이나 감정적 소모를 피하기 위해선, 안전한 AI로 대피하면 되니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불편함 속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가치가 있는게 아닐까? 돌아보면, 우리를 성장시키는 순간은 대부분 누군가의 진지한 질문, 애정어린 비판, 새로운 관점의 피드백이었다. 물론 AI는 유용하다. 많은 지식과 정보, 심리적 편안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관점을 흔들고, 가정을 깨고, 나를 변화시키는 힘은 여전히 인간의 대화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성장시켜주는 진짜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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