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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시간>이 던진 질문: 대화란 무엇인가

<AI 시대, 대화의 기술> 2.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by 강정욱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을 추천한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은 10대 소년 제이미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국 드라마다. 시리즈 전체가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는데, 보자마자 푹 빠져들었다. 드라마에는 몇 번의 중요한 대화가 등장한다. 제이미는 아빠, 변호사, 심리학자와 대화하고, 형사는 학생들과 대화한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빠는 아들의 정서적 신호나 내면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나 또한 그랬다. 드라마에서 말하는 10대 문화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고 한참 후에야 제이미의 마음과 그를 둘러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이슈라는 것까지. 내가 제이미의 부모였다면 어땠을까. 내 손으로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무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이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 대화가 어렵지 않지만,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10대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꼭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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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모험이 되었다.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이 떠올랐다. 젤딘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미지의 대륙이나 밝혀지지 않은 과학, 인권의 평등 등이 인류의 도전 과제였다면, 지금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모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닮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서로를 평균적인 인간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의미 있는 대화란, 그러한 평균을 넘어서 각자의 고유한 경험과 태도, 세계관을 인정하고 이해해 가는 여정이어야 한다.


이론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의 『대화란 무엇인가』도 추천할만하다.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어떤 것을 공통된 것으로 만든다(to make something common)”는 뜻이다. 대화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선 ‘상대에게 영향을 주려는 목적' 없이 듣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두 사람의 주장은 맞닿아 있다. 대화는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공동 창작이며, 새로운 인식의 발견이다. 의미 있는 대화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만든다.


최근 한 영상을 통해 르완다 '가차차' 재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과거 르완다는 종족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으며, 3개월 만에 100만 명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끔찍한 제노사이드(인종 말살)를 극복하는 과정은 징벌이 아닌, 대화와 화해를 중시하는 '가차차 제도'였다고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과거의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인데, 지난 10년 동안 190만 건의 재판이 이뤄졌다. 그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를 위해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용기를 낸 대화가 르완다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ttps://youtu.be/cHq10Ttel2A?si=L0W09MAn2HYeSJbp


대화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지난번 글에서 AI와의 대화를 비판적으로 작성했지만, AI와도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도 최근 다양한 AI 퍼소나를 설정해 두고 토론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도 한다. 게다가 AI와의 대화는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고 더 쉽고 편하다. 업무를 할 때만큼은 '결코 지치지 않는' AI의 도움을 적극 얻을 수밖에 없고, 앞으로 정말 많은 일이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효율성과 유용성 만큼은 최고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사람 간의 ‘불편한 대화’가 더 귀한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 AI는 언제나 친절하고 편안하지만, 사람과의 대화는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새로운 의미’가 있다. 결국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완벽한 말솜씨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로 한 걸음 들어가려는 마음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그 작은 용기가, 앞으로의 시대에도 꼭 필요하다. 좋은 대화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도 모른다.


"참가자는 편견이나 상대에게 영향을 주려는 의도 없이 타인의 말에 자발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쌍방의 주된 관심은 진실과 일관성이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기존 생각과 의도를 버리고 다른 것을 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양쪽이 서로에게 고정된 정보를 주듯이 특정 개념이나 관점을 전달하려고 든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대의 이야기를 본인의 사고라는 그물망을 통해 걸러낸 상태로만 듣기 때문이다." - <대화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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