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대화의 기술> 3. 1년에 한 번 나누는 깊은 대화
<AI 시대, 대화의 기술>
나는 20대 중반부터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엔지니어링을 전공했지만, 결국 HR과 리더십 관련 커리어로 전환한 이유도 '관심과 흥미의 차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1인 기업가로 활동할 때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심톡(Simtalk)'이라는 대화 모임을 만들고 주도했다. 매월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모였는데, 깊은 대화를 통해 자기 인식을 돕고, 다양한 관점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나의 인생 그래프를 찾아서'와 같은 주제가 기억나는데, 소수의 사람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2년 동안 진행된 대화 모임이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이름은 없지만, 굳이 지어보자면 '연간 체크인'인데, 몇몇 지인들과 1년에 한 번씩 만나 목적 없이 대화를 나눈다. 1:1 대화부터 최대 4명까지 구성은 다양하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1년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빨리 흐른다. 서로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나누다 보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위안과 힘을 얻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마음을 다잡거나 새로운 자극을 받는 계기도 된다.
대화 주제는 꽤 다양하다. 리더십, HR, 커리어, 조직 문화처럼 비교적 실용적인 주제부터 인생, 육아, 최근 고민, 혹은 즐겨 읽는 책 등 상당히 폭넓게 다룬다. 한 가지 느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주위에 좋은 자극을 주는, 좋은 대화 파트너가 있다면 그 인연들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믿는다.
1년에 한 번이지만, 이러한 대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간의 경험을 깊이 있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 따르면, 우리의 자아는 경험자아 (Experiencing Self)와 기억자아 (Remembering Self)로 나눠진다. 경험자아란, 현재의 순간을 경험한다. 지금의 감정, 고통, 즐거움을 느낀다. 반면 기억자아는 경험한 일을 회상하는데, 주로 과거의 경험을 요약하고 기억으로 보존한다. 기억자아는 경험의 총합보다 어떤 강렬한 순간이나 마지막 기억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과정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끝내 뿌듯함과 성취를 느꼈다면 '기억자아'는 그 순간의 경험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든다.
경험과 기억, 두 시스템은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기억자아의 영향을 받아 의사결정을 내린다. 경험 그 자체보다 경험 후 "그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다음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기억자아는 어떻게 구성될까? 핵심은 단편적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Narrative)'로 구성하는 것인데, 이때 강력한 방법이 글쓰기와 대화다. 특히 대화는 과거의 다른 경험이나 타인의 경험과 비교하며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볼 수 있고.
즉, 나의 독자적 경험은 타인과의 대화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고, 새롭게 해석되며, 이야기로 저장된다. 예를 들어, 단순히 "그때 진짜 힘들었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그래도 그때 힘들었지만, 내가 진짜 많이 배웠지"라고 말하고, 누군가가 그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같은 사실을 다르게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에 한 번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 '지난 1년을 재구성하고' 나에게 의미 있었던 배움을 기억자아로 저장시키게 된다.
결국 깊은 대화란, 지나온 시간을 의미 있게 편집하고 더 선명하게 이해하는 일종의 ‘내면 정비’에 가깝다. 바쁜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배움과 감정을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꺼내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과 깊고 느린 대화를 나누기를 권하고 싶다. 그 대화를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다음 한 해를 살아갈 방향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