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우리를 구하는 것은 미친듯 몰입했던 기억이다

개인과 조직, 몰입 경험의 필요성

by 강정욱

미친듯 몰입해 보는 경험의 필요성


인생에서 한 번쯤 겪어야 하는 경험이 있다. 낯선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보는 것,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서 결정을 내려보는 것, 다른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것 등등 그중에서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미친 듯 몰입해 본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 지식을 획득하거나 글을 쓸 때 더 쉽게 AI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러한 태도를 경계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무언가에 집중했던 기억은 다양하다. 중학교 시절, 게임할 때도,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도 그랬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진정으로 모든 걸 걸고 몰입했던 시기가 있다. 바로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의 기억이다. 최초 발화된 기억은 흐릿하다. 아마 수능을 1년 남겨 놓은 시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여느 학생들처럼 성실히 공부를 하긴 했지만, 100% 몰입한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만족스럽진 않았다.


인생에서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 있다. 나의 의지를 믿으면 안 된다는 것. 아무리 굳건한 결심을 했더라도, 그에 맞는 상황에 주어지지 않으면 이내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쉽게 풀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마침, 기숙형 학원 광고를 보게 되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여기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2달 동안 학원에 머물렀다. 독하게 먹은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 공부 말고는 어떤 것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것도 효율적으로 하고자 했다.


아직도 기억남는 장면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친구들이 씻을 시간에는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자 독서실에서 공부했고, 다들 씻고 나왔을 때 가장 늦게 들어가서 빠르게 씻었다. 또 수업 시간이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에도 독서실에 내려가서 복습을 하거나, 차라리 거기서 혼자 쉬었다. 거의 2달을 보냈지만, 친구들과 교류하지 않았고, 말을 섞은 것도 거의 퇴소하는 시점에 가까웠을 때였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원래 그런 사람, 다소 독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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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탱하는 '기억하는 자아'의 힘


결과는 어땠을까? 다행히 단기간에 성적이 올랐고, 3월 모의고사도 꽤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조금씩 내려가기도 했는데, 겨울방학부터 만들어진 공부 습관은 그래도 단단하게 버텨 주었다. 1년 내내 주도적으로 스케줄을 세우고,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스스로 채워 나가며 공부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여름부턴 다시 성적이 올라왔다. 물론,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내내 보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그 1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했다.


그때로부터 25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에게 수능 성적이나 대학교, 혹은 전공은 크게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땐 그런 것들이 내 인생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특히, 나는 전공과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 당시에 전념으로 몰입했던 기억이다. 스스로 정해 놓은 '나'의 경계를 살짝 넘어본 경험이었다.


그때 만든 습관은 쭉 유지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았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그 이후에 나는 쉽게 느슨해졌고, 꽤 오랫동안 방황했다. 한참을 그렇게 살다가 대학교 졸업 시점에 가까워졌을 때, 다시 나사를 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시점의 내가, '과거에 몰입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정신을 차리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 조금 쌓아 놓은 나에 대한 신뢰와 내러티브(Narrative)가 위기의 순간에 나를 지탱해 주었다.


인생에서 내가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한 경험과 그로 인한 배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다니엘 카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강조하듯, 삶을 직접 경험하는 '경험하는 자아'가 아닌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억하는 자아'를 통해 우린 스스로를 구성한다. 그러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코어 기억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의지에 의해서 100% 몰입해 본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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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를 만드는 '승리의 기억'


이러한 원리는 개인을 넘어 조직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조직 역시 그들만의 '코어 기억'이 존재한다. 그러한 경험은 평온한 시기보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쌓인다. 실질적으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거창한 메시지 선포가 아니라 '함께 몰입해 문제를 해결해 본 승리의 기억'이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의 경험은 더 강렬한 법인데,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던 상황에서 모두의 몰입과 협력을 통해 이겨내 본 적이 있다면, 그 조직은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우리는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집단적 믿음과 신뢰를 갖게 된다.


결국, 리더의 역할은 개인들의 의지에 그저 기대는 것이 아니라, 몰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당시 내가 고3이라는 위기감 속에서 스스로를 기숙학원이라는 환경에 던져 넣었듯, 조직도 적절한 위기감을 설계하며, 명확한 우선순위로 몰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공통의 기억'은 조직이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나사를 조일 수 있게 만드는 힘이자, 그 자체로 조직의 신념이 된다.


위기의 순간에서 나를 구했던 것은 '온전히 전념했던 순간'이었고, 팀을 구하는 것은 '함께 몰입해서 끝내 성취했던 기억'이다. 그런 기억들을 촘촘히 쌓아나갈 때,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성과를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치열하게 행동하고 배워 나가는 과정을 거듭할 수는 있다. 그렇게 쌓인 승리와 배움의 기억들이 모여 나와 우리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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