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안세대>와 다큐 인사이드 <불안 탐구>를 보고
2019년, 아이가 다섯 살이던 해에 글을 하나 썼다. <우리 아이를 위한 스마트폰 설명서>라는, "담배는 안 되고, 스마트폰은 된다고?" 라는 도발적 질문으로 시작했던 글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고,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를 겪으며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숏츠와 틱톡이 일상을 잠식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10일 호주는 세계 최초의 ‘청소년 SNS 금지법’을 시행했다. 자율권과 보호권은 분명히 논쟁적인 주제지만 SNS로 인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굳은 의지로 관철되었다. 나는 작년에 조너선 하이트의 책 <불안 세대>를 읽었고, 최근 KBS 다큐인사이트 <불안 탐구 2부작>을 흥미롭게 봤다. 특히 다큐를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간단히 남기고 싶었다.
책 <불안 세대>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2010년을 전후로 스마트폰이 대량 보급되면서, 아이들의 아동기가 ‘자유놀이 기반’에서 ‘스마트폰 기반’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의 우울, 불안, 심지어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하이트는 이것을 ‘전 인류가 행하고 있는 위험한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전두엽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24시간 연결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쥐어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스마트폰에 중독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쉽지 않다. 그 흐름에 저항하는 부모들을 "유난 떤다." "별나게도 키운다." "부모가 편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이유로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쉽게 상정한다. 그 결과,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량은 갈수록 늘어났다.
“모든 부모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진퇴양난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대다수 부모는 자녀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를 보내길 원치 않지만, 세상 자체가 확 바뀌어 그 물결에 저항하는 부모는 자녀를 사회적 격리 상태로 내몰게 된다.” — 조너선 하이트, <불안 세대> 중에서
KBS 다큐인사이트 <불안 탐구>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을 현실 세계에서는 과잉보호하면서 가장 위험한 가상 세계에서는 과소보호했다”는 문장이다. 과잉보호와 과소보호,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아이들은 넘어져 보지도, 스스로 위험을 판단해 보지도 못한 채, 숏폼과 같은 강력한 자극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나이 많은 어른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데, 하물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의 스마트폰 남용은 사회적 문제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대처 역시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미디어를 최소화하며 아이를 키워 왔다. 그리고 비슷한 선택을 한 부모들과 꾸준히 소통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고, 아주 많은 케이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한 아이들의 몇 가지 공통점은 존재했다.
첫째, 독서량이 많다. 스마트폰이 차지할 시간이 비어 있으니,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책으로 채워졌다. 물론, 각 부모들이 모두 책을 좋아하고 도서 노출량이 많았던 것도 맞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강렬한 자극이 없어야 책에 손이 가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둘째, 자유놀이에 몰입한다. 아이는 이제 꽤 커버린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레고로 상황극을 만들거나 뭔가를 조립한다. 숏츠와 같은 짧고 빠른 콘텐츠에 길들여지지 않아서 그런지, 심심한 시간을 자기만의 자유놀이로 채운다. 조너선 하이트는 어른의 개입 없이 스스로 탐구하고, 실수하고, 배우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중요한 차이점이다.
셋째, 수업 중에 선생님에게 집중한다. 예상치 못한 공통점이었는데,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수업을 잘 듣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느리고 약한 자극에도 반응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빠르고 강한 자극에만 익숙해진 뇌는 현실 세계의 느린 정보에 반응하지 못한다. 유튜브나 숏츠에 비하면 교실은 너무 느린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미디어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원칙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을 혼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영상은 함께 보며 즐긴다. 예를 들어, 아이는 역사와 여행을 좋아한다. <벌거벗은 세계사>처럼 역사 예능 프로그램은 함께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여행 예능도 좋아해서 <톡파원 25시>나 <다시 갈 지도> 같은 방송도 종종 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픽사와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즐겨 보고, 최근에는 SF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함께 봤다.
미디어를 볼 때,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아이의 관심사에 맞춰 선별할 것. 부모와 함께 볼 것. 보고 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쓸 것. 같은 영상을 봐도 혼자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것과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예전 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보약은 당장 효과가 없지만, 진통제는 부작용을 함께 가져온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강력한 진통제다. 아이가 울 때, 식당에서 소란을 피울 때, 부모가 지쳐 있을 때, 즉각적으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아이의 집중력, 인내심, 그리고 현실에서 관계를 맺는 능력이 조금씩 깎여 나간다. 그리고 이 손실은 나중에 우울과 불안이라는 형태로 돌아온다. 이것은 더 이상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문제다.
솔직히, 나도 아직 답을 다 가지고 있지 않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나도 모른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쓰는 환경에서 여전히 버틸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관찰은 분명하다. 미디어를 최소화한 아이들은 책을 더 읽고, 더 자유롭게 놀고, 수업에 집중한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목소리라고 느껴진다. 조너선 하이트가 제안하듯, 이것은 한 가정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학교, 정부, 기업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최근에 유튜브 영상에서 학군지 아이들의 '평균 키'가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도한 공부로 인한 수면 부족의 결과라고 하는데,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쉬운 방법은 우리를 쉽게 길들인다. 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좋은 육아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