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묵은 별빛은 도대체 언제부터 출발한 것일까?
최근, 우연히 KBS에서 하는 '축적의 시간’ <1부. 천재는 잊어라> 강연을 봤다.
알고 보니 지난 3월에도 비슷한 강연이 있었고, 이번에 두 번째 강연이더라.
강연자는 서울대학교의 이정동 교수님이었다.
강의 정리는 오랜만이다. 하지만, 그만큼 인상 깊었기에,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 봤다.
관련해서 책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도 간략히 읽었다.
결론은 이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도움이 안 된다. 그 자체로 틀린 말이다."
결론은 내가 기존에 가진 생각과 100% 일치한다. 나 역시 그런 건 없다고 보는 편이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시행착오를 통한 ‘축적’에 있다.
강의와 책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해 본다.
우리나라는 지금, 거의 모든 산업에서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
장기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의 턱밑까지 따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실행 역량은 우리보다도 강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은 중국이나 인도가 다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다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똑똑하면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중국이 우리만큼 열심히 하는 데다 똑똑하고 돈까지 많으니 위기일 수 밖에 없는 거죠.” <축적의 시간, 한종훈 교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어느 CEO가 '축적의 시간'이란 다큐를 보고, 우리도 '개념 설계'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앞으로 신사업 부서에게 '개념 설계'를 하라고 시켰다고 한다. '주말 출근'도 불사 하면서.
그것은 완벽한 오해다. 개념 설계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데이비드 블레인이란 마법사의 사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어느 쇼에서 그는 물 속에 들어가서 17분을 넘게 버텼다. 의학 기준으로 6분이면 뇌사에 빠지는대도 불구하고.
그 시작은 바로 친구의 '신기한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튜브를 몸에 넣고, 숨을 참아보라는 것. 시도는 완전히 실패한다. 그런데 그 이후 데이비드의 진짜 훈련이 시작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몇 년 동안 훈련한다. 그리고 성공한다.
그 마술의 비밀은 뭘까? 그저, 1초씩 더 참아나가는 것이엇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도 커다란 울림이 있는 문장이었다.
"그건 연습이고 훈련이며 실험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고를 위해서는 고통을 헤치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마술입니다."
비밀은 단순했다. 연습, 훈련, 실험을 반복해 나가는 것.
어떤 방법이 더 좋을지 실험하면서 1초씩 더 줄여나가는 것. 그는 그 1초를 줄이기 위해 심장 의사를 찾아가고, 요가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것이 마술의 비결이고, 개념 설계의 비밀이었다.
즉, 개념 설계 = 아이디어 X 스케일업 (점진적 실험과 연습, 그리고 훈련)
“청사진을 제시하는 이 개념설계 역량이야말로 고부가가치 영역이면서,
산업의 패러다임을 설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발돋음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역량이다.”
문제는 스케일업에 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키워 나가는 과정은 시행착오, 반복된 실험, 기술보완, 인재확보, 갈등 조정, 설득, 자금, 데이터 축적 등 온갖 고통을 몸에 새기며 이뤄진다.
이를 통과하면, '몸에 흉터가 가득한' 고수가 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에는 이러한 고수들이 가득하다.
스케일업은 아이디어보다 훨씬 어렵고 귀하다. 아이디어는 이제 너무 흔하다. 스케일업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모든 기업이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것, 특허, 논문, 잡지에 실리지 않은 것들을 핵심 자산으로 해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축적의 시간> 신창수 교수
“스케일업은 교과서에 있는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실패 리스크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위험 때문에 스케일업 과정이야말로 신사업 프로젝트를 담당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과정이다.” <축적의 길>
스케일업, 비유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묵은 별빛'이다.
지금 나에게 보이는 별빛은 백만년 전에 출발한 빛이다. 모든 별빛은 그렇다.
다시 말해, 우리 눈에 보이는 대단한 혁신들은 지금 당장 출발한 빛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출발한 별빛이다.
혁신은 결코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 혁신은 느리다.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저 묵은 별빛은 도대체 언제부터 출발한 것일까?"
자, 그렇다면 스케일업은 어디서 시작해야할까?
첫 번째, Know WHY
스케일업이란, 바로 'WHY'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그 정체성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후지필름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우리는 누구였는가?" 계속해서 물었다. 그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필름 회사가 아니라, 화학 회사였다."
그리고 바꿨다. 첨단 화장품,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만들면서 제 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질문은 중요하다.
두 번째, 경험의 축적과 기록의 문화
우리나라는 개인적 역량이 정말 뛰어나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100년 노하우 위에서 싸운다.
1:1로는 우리가 이긴다. 하지만, 단체로 싸우면 우리가 진다.
스케일업이란 체계적인 기록이다.
그렇게 계단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타인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자신의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서로의 기록을 쌓아 나가야 한다.
지금은 창의적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찾는 시대가 아니다.
아이디어가 강조될 수록, 단기 성과주의에 그대로 빠질 수 있다.
진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오랜 시간 지속되는 스케일업에서 비롯되었을 때 가치있다.
다시, 노력의 시대다. 될 때까지 집요하게 실험하는 그런 시대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바로 리더다. (2부에서 계속 될 예정)
그렇게 1부 강의가 끝난다.
일관적인 메시지는 결국 "아이디어가 아니라 ‘스케일 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책 <축적의 길>에서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한다.
“아이디어가 흔하다는 이야기는 원천적 발명, 최초의 아이디어가 가진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발명Invention과 혁신Innovation의 거리가 그만큼 멀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스케일업이라는 위험가득한 과정을 버틸 수 없으면 아이디어에서 혁신까지의 바다를 건너갈 수 없다.”
그리고 ‘산업 현장’과 ‘제조업'의 중요성은 이번 강의에서 크게 드러나진 않는데,
실제로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 두 책 모두 아주 많이 강조하는 포인트다.
"산업현장에서 멀어지면 추상적으로 학문을 하게 돼요.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창의력이라는 게 머리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만들고 궁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겁니다.” 축적의 시간 <이병기 교수>
“직접 시도를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고, 그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그럴 현장이 있는가?’이다. 시행착오는 상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고, 그 결과를 확인해야 하니까 당연히 현장이 필요하다. 왜 기술 선진국들이 제조공장을 자국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을까.” <축적의 길>
나 역시 애초부터 이 관점에 동의하고 있었기에, 밑줄을 좍좍. 제조업은 나라의 근간이다.
그렇게 전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래 문장에 눈에 들어왔다.
“유량 flow이 아니라 저량 stock 중심의 사회로
일시적 총력 동원이 아니라 장기적 경험 축적 사회로”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전문을 옮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창조적 축적을 위한 열린 자세와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새롭고 도전적인 개념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이러한 경험을 축적하고자 노력하는 조직과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사회적 인센티브 체제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
나아가 추격경제 시기에 우리 산업계와 정책 의사결정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성공의 방정식, 즉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항상 정해진 목표를 조기에 초과 달성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시행착오의 과정과 결과를 꼼꼼히 쌓아가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일순간 얼마나 많은 자원을 몰아갈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는 유량 중심의 사고 방식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에 관심을 두는 저량 중심의 사고방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저자의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은 비단, 산업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결국 ‘기발함’을 쫓는 건 승자가 될 수 없다.
1만 시간이라는 ‘양’과 체계적으로 설계된 훈련인 ‘질’이 만날 때,
각자의 삶의 혁신과 변화 또한 가능하다.
양과 질 모두 턱없이 부족한 내 삶을 반성하며, 글을 마친다.
‘축적의 시간-2부, 유령이 된 리더’는 이후에 한번 더 정리하고자 한다.
긴 내용, 읽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합니다. :)
(전문은 제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링크는 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