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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Jan 05. 2019

내가 전공을 포기한 이유

서문 Preface

2001년, 대학교를 입학하다.


벌써 18년 전이다. 나는 2001년에 대학교를 입학했다. 전공은 전파 통신공학이었는데, 당시엔 당연하게도 스마트폰이 없었다. 흑백 화면에 단음인 휴대폰을 꾹꾹 눌러쓰던 때, 수업에 들어가면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4G가 상용화되면, 몇 초 만에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세상이 오는 거야!” 3G도 서비스되지 않을 시점에 4G라니! 분명 놀라운 사실이었다. 일반 공학도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 “놀라운데! 어떤 기술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우등생이다. 허나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과연 행복한 세상일까? 

여러분의 예상처럼, 나는 ‘공학’이라는 전공에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문과를 갔어야 하는 기질이 아니었나 싶다. 학창 시절 진로 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다른 길을 찾은 것도 아니다. 내 성격답게 미지근하고 느긋하게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후회스런 시간이 지금 좀 더 열심히 사는데 도움은 된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 내가 정신을 차린 건 2008년 말,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서 돌아오고 난 뒤다. 부모님께는 견문을 넓힌다는 핑계를 댔지만, 결국은 도피성으로 떠난 워킹 홀리데이마저 끝났다. 나는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이젠 취업을 해야 했다. 아니, 적어도 밥 벌이는 해야 했다. 



전공자가 아닌, 나로 살아간다는 결정 


그때 나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한다. 전공과 상관없이 내 삶을 이끌겠다고 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어느 대학교, 어느 학과의 나’가 아닌 그저 ‘나’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력도 뭣도 없었기에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엔지니어로서의 10년 뒤 내 모습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어찌어찌 운이 좋게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행복하게 일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2009년 1월, 살면서 처음으로 뜻을 세웠다. 시작은 단순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주위 상황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부모님께는 당분간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고 연락을 끊었다. 친구들이나 후배들과도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내 의지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까.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 같으니까 말이다. 멈춘 것도 있지만, 새롭게 시작한 것도 있다. 내가 원하는 공부를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삶을 진지하게 대했다.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이 좌절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그렇게 한 걸을씩 걸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다 


이제 10년이 지났다. 다행히도, 아직 나는 살아있다. 심지어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내가 인생을 이끌고, 인생이 나를 이끌었다. 때로는 내가 의도했던 곳으로,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그 과정에서 내 삶을 지지했던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과거에 나에게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그러한 내용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일부는 과거에 적은 글을 재수정했음을 알린다. 


이 매거진의 독자는 단순하다. 크게는 ‘지금까지의 과거와 단절하고 싶은 사람들’이고, 작게는 나와 같은 ‘전공 포기자’들이다. 척박한 상황이었고, 가끔은 절망적이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살아남았던 나의 경험을 기술하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지나온 나를 추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결국, 나를 구원하기 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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