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정욱 Jan 09. 2019

책을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독서 Reading


처음으로 책에 흠뻑 빠져본 기억


나에게 있어 책을 읽게 된 첫 번째 계기는 군대다. 군대에선 생각이 많아지는데, 특히 '미래에 대한 걱정’이 주된 주제다. 전공에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한 나였기에 더욱 그랬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붙잡은 것이 독서다. 사실 '발버둥'이 더 적확한 표현인데, 그저 마음을 달래고자 주위 책들을 읽어나갔다. 월간지 '좋은 생각'부터 자기 계발서, 판타지 소설, 종교 서적 등등 목표도 없고, 맥락도 없는 파편적 독서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300권을 읽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모든 책을 자발적으로 읽었으니 어쩌면 가장 소박하면서 행복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책 읽기의 재미를 처음 느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책 읽기가 아닌, 독서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 그것이 지속적 몰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의 독서가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는 장거리 달리기'라고 정의한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축적된 독서량이 중요하다는 사실.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장거리 여정에서 ‘자발성’과 '즐거움'은 독서가의 가장 중요한 우군이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책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때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어떤 실험에서 아이큐는 높지만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혔더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때 그 사람은 “난 아이큐가 꽤 높은 편인데 이해할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독서를 잘 모르기에 나온 발언이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장거리 달리기나 행군과 비슷하다. 특별히 발이 빠를 필요가 없다. 날마다 달리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면 대부분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독서력 P.45


사이토 다카시



굳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묻는다면


경험을 통해 삶을 배워 나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책을 가지고 뭘 배울 수 있겠어? 직접 부딪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서 책으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꽤 존재한다. 하지만, 답은 간단치 않다. 경험과 이론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더욱 그렇다. 서양 철학사에서도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은 평생선을 달린다. 경험주의자들은 이론가들을 '해본 것이 없다'라고 얕잡아보고, 이론가는 '그게 다인 줄 안다'며 무시한다. 나 또한 고민이 많았다. 그 와중, 철학자 강유원의 책 <몸으로 하는 공부>를 읽었다. 결국은 지행합일, 경험과 이론 둘 다 겸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은 인간에게 가까운 것이어서 겪어서 알게 된 것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의 하나는 바로 ‘겪어서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전쟁을 겪어본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주제에 관한 한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즉 “낙동강 전선에서 압록강 전선까지 모든 전쟁을 겪었느냐’는 반론 말이다. 오히려 몸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고 전체를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태의 실상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도 있는 것이다. 몸으로 겪어봐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험과 이론 둘 다가 겸비되지 않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지식이라 하기 어렵다. ... 이걸 흔히 ‘지행합일’, 또는 ‘지행일치’라고 한다." 몸으로 하는 공부


경험과 이론 둘 다가 겸비되지 않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지식이라 하기 어렵다


경험과 독서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어디에 더 가까운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와 같은 책벌래들은 의도적으로 총을 메고 전쟁터로 나갈 필요가 있다. 세상을 향해 뛰어든 사람들을 거울삼아야 한다. 반대로, 최전방 전쟁터에서 싸우는데 정신이 팔린 이들은 한 번쯤 멀리 올라와야 한다. 높은 곳에서 관조하는 즐거움도 충분히 의미 있음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지식과 경험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책을 통해 관심사를 넓히고, 행동으로 검증하고, 다시 성찰하고 배우는 과정. 그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배움의 지름길이다. 전공을 뒤로하고, 사회에 나와 전문성을 얻으려는 나 같은 이들에겐 ‘배움의 속도’가 더더욱 중요하다. 자신만의 지식 구축 방법을 만들기를 권한다.




만약,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한 가지 사실을 절대시 하게 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음미하는 관용적인 태도를 볼 수 없었고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모범으로 삼는 경향이 강했다. 모순되고 복잡한 사실들을 마음속에 공존시키는 것. 독서로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복잡성의 공존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다. 문해력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문맹률은 OECD 중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알기 어려운 세상이다. 손 안의 스마트폰은 우리가 전지전능해졌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더 필요한 세상이지만, 갈등과 독선만이 가득하다. 독서와 사색이 사라진 지금은 미디어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물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수립하고,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힘들고 부자연스럽다. 의도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잘 길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꼰대가 된다. 내 안에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공존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책을 왜 읽어야 할까? 더 인간답게, 더 주체적으로, 함께 잘 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모순되고 복잡한 사실들을 마음속에 공존시키는 것. 독서로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복잡성의 공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을 멈출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