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나를 중심에 두고 가지를 여러 개 만들고 주변 사람의 이름을 썼다. 이름에서 다시 가지를 만들어 그들에 대한 감정을 썼다. 지금쯤이면 흔적을 감춘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세상에 비밀은 없으니 어디선가 이야기를 듣고 나를 측은해할 누군가도 있을 거라 짐작했다.
현이, 선화언니, 경화언니, 그리고 구연우, 지금 현재 심장이 뛰고 있는 나의 관계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이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약해빠진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약한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넷은 이상하게 나의 어느 한쪽을 가져가 돌보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언니들이 있어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말할 힘조차 없을 때 언니들이 대신 욕이란 욕은 다 뱉어주었다. 나는 그저 진이 빠진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내 상황을 체념했다.
화가 나는 건 도덕적이지 못한 그가 벌인 사건의 전말과 함께 비겁한 그의 변명과 그것이 도덕과 윤리에 어긋난 짓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와 같은 그의 태도와 말 때문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우리의 관계가 갑과 을이라 한다면 이상하게 내가 을이 된 기분이었다
전남편: 미안해 죽을죄를 지었어. 다 내 잘못이야. 진짜 미안해.
그는 막장 드라마 대사를 외우듯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를 땅 속아래로 추락시키는 것은 나에게 잘못을 했다고, 미안하다고 할 때 그 말의 뉘앙스와 표정으로 추락해 버린 나의 자존심이었다. 그의 말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의 관계도를 만들어 나에게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누군가와의 연결가지를 잘라내려 한다.
“싹둑”
사회생활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관계로 얽힌 이들이 많았다
초중고 친구부터 해서 취미 생활로 연결된 사람들, 그리고 전 남편 때문에 인연이 된 사람들 어찌 보면 심플한 관계의 큰 줄기들이지만 연결된 잔가지들이 많았다. 내 큰 가수들아 연우가 들어와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와 인연은 10년 전에 점을 찍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떡하니 그 이름이 나의 관계도 끝에 쓰여 있다. 그리고 그가 내 삶을 바꿀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지금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소원했거나 보이지 않는 적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을 쓰고 들여다보니 내쪽 친밀감의 정도가 얕았다. 나의 치부를 이야기하고 나면 왠지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할 거 같은 비밀 보장해 신뢰감이 떨어지는 사이였던 거다
내가 그거 놓은 가지들을 바라보며 고민을 했다. 나는 이 관계를 싹둑 잘할 것인가 아니면 얇은 가지를 그대로 둔 채 끊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을 것인가
나: 넌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때? 진심으로 네 편들 이 있어? 네가 느끼기에 그 어떤 말을 해도 말이 튀어 나가지 않을 사이? 믿을 수 있는 사람?
그: 글쎄 남자들은 보통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 진짜 내면 속의 이야기들은 나는 잘 꺼내지 않는 거 같아.
나: 왜 그럴 때가 있잖아. 엄청 힘든데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나면 조금 시원해지는 거? 그동안 그런 사람이 없었어?
그: 딱 한 사람이 있네. 너 정혁이 기억나지?
나: 당연하지. 그때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려.
그: 응? 무슨 일 있었어?
그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평생 그의 친구와 나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그 이야기의 봇물이 터졌다. 그는 지나간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그와 정확히 사람의 존재로 알고 지낸 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그러니 그와 알고 지낸 것은 7년, 그가 나를 속으로 몰래 좋아한 것은 3년, 계속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사탕바구니를 건네며 고백을 했었다고 우겼지만 나는 그것은 사랑은 아니었을 거라고 그를 설득시켰다. 대학을 입학해 나를 우연히 본 뒤 그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간직했던 설렘이 꽃을 피우듯 활짝 펴 그의 속앓이는 시작되었다.
2년은 몰래, 그 뒤로 1년은 군대도 몇 차례 연기하며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헌신적으로 내 곁에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오 년 동안 우리의 사랑은 나무랄 데 없이 풋풋했고, 예뻤다. 1년쯤 지났을 무렵 그의 군입대 소식을 듣고 내 하늘은 무너졌다. 천천히 스며들게 했던 그의 자리는 생각보다 깊었고 넓었다.
그의 친구, 정혁이와의 기억은 그가 군 입대 하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였다. 그를 보내고 뒤돌아서면서부터 시작된 대성통곡에 가까운 눈물이 멈추지 않고, 조용한 기차 안에서까지 이어져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못했다.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며 나는 실신해 친구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갔다. 수액처치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흐느끼는 나를 보며 그 친구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많이 울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대 “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울음을 그쳤고,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를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제대한 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받은 사랑에 더 해 그를 사랑했다.
너무 울어 실신한 그날, 병원을 나오며 절대 그에게는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친구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나: 그 친구라면 믿을만해. 정혁이도 잘 지내고 있지?
그: 응, 여전해. 결혼해서 자주 만나진 못해도 전화는 자주 해.
그와 정혁이의 관계, 나에겐 현이가 있다. 삶에서 내 마음을 다 꺼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나는 관계도 앞으로 가서 애매모호한 누군가의 이름을 까만색 색연필로 지웠다. 마치 폴 세잔의 그림과도 같았다.
폴 세잔(Paul Cézanne)의 "카드놀이(The Card Players)" 시리즈는 총 다섯 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의 그림은 크기와 구성이 다르다. 누군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아니지만 카드놀이 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모습이 조금 전 관계를 정리하는 내 모습이었다.
이 작품들은 세잔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농민들이 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세잔은 이 시리즈에서 각각의 인물을 매우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기하학적 형태와 간결한 선을 사용하여 인물과 배경을 단순화시켰다.
간결한 관계, 이제 제대로 된 관계의 이미지를 만들어갈 때다. 얕고 넓었던 관계에서 깊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때임을 알고 있다. 더 이상 관계라는 것에 끌려 다닐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인생의 반절쯤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세잔의 작품이 주는 이야기에서 관계의 답을 찾았다. 그것이 답이 아닐지라도 괜찮다. 이제는 나에게, 그리고 나의 어느 한쪽을 돌보는 듯한 내 편에게 집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