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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29. 2024

그냥

 [그냥]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그는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것은 뭔가 의견을 물을 때나, 그의 마음이 궁금해서 툭 던지는 말들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나와 있으면 그냥 뭐든 다 좋고, 다 괜찮고, 그냥 내가 좋다고 한다. 어디가? 어떻게? 무엇이? 가 궁금한 나는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무릎에 누워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꼭 잡고 물었다.      


나: “구체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어. 어디가? 어디가 좋은 거야?”

그: “그냥 전부 다, 진짜로, 그냥 다 좋아”      


그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고, 그가 전부 다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시고 내쉬는 숨의 공기가 달라졌다. 세상의 예쁜 장면을 마주할 수 있게 되고, 멈추어 그것을 음미했다. 물론 내 옆에는 그가 있었다. 마치 스무 살 청춘이 된 그것처럼 하루하루가 가볍게 느껴졌고, 그가 나이고 내가 그가 듯한 묘한 감정이 달콤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 별을 보러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산책하고, 여행을 가고, 함께 달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냥 서로가 곁에 있음이 행복했다.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되고, 삶의 시간을 차곡차곡 잘 걸어야 할 이유였다. 그사이 내 그림의 색은 달라졌다. 긍정의 감정이 색에도 전해졌나 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새로운 색의 언어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누군가에게 전해졌다. 작품 문의 전화가 오면 나는 묻는다.      


“제 작품의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그냥 다 좋아요”     


‘그냥’이라는 말에 안도했다. 이 사람은 정말 내 작품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담은 그림은 그냥 좋다는 누군가에게로 갔다. 그날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냥’의 힘에 대해서, 그냥이 그냥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비장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빤히 보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는 그렇게 말이 없을 때가 많다. 그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표정과 몸짓으로 말한다. 그게 참 좋다. 말로 듣지 않아도 많은 것이 느껴진다.     


“연우야, 네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 너에게 전화를 못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찾았을 거야. 너.”

“어떻게?”

“그냥”

“또 그냥이래. 하하”      

스무 살에서 점프하여 마흔이 된 우리는 이전과 다르게 편안했다. 서로를 더 공감했고, 애쓰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각자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좋은 사람으로 나아갔다. 꽁꽁 가두어 두며 나를 괴롭혔던 상처의 흔적들은 사라졌다. 그의 웃음에, 그의 배려에, 그의 사랑에 갈 곳을 잃어 헤매다 사라졌다. 삶은 언제나 다 좋을 수 없었고, 또 계속 나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가 없던 내 삶과 그가 있는 내 삶은 호흡하는 공기의 색이 다르다.      


“연우야, 내가 어디가 좋아?”

“그냥 다 좋아”

“왜 좋아?”

“그냥 좋아”      

새벽에 일어나 창밖의 여명을 보고 있는 그를 안고 묻는다.

‘그냥’, 그것만큼 진실하고 달콤한 고백이 있을까?

마르크 샤갈 _ 선물


마르크 샤갈의 그림은 감미롭다. 형태와 색의 표현이 환상적이다. <생일>이라는 작품은 환상적인 느낌에 설렘까지 더해져 마음까지 빠져들게 한다.      

샤갈의 작품 속 ‘벨라’, 그녀와의 첫 만남을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나의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 미래까지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면서 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생각들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직감적으로 벨라가 내 아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유한 보석상인 벨라의 부모는 둘의 사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서로를 천생연분이라 확신하는 두 사람은 결국 1915년 7월 25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결혼을 앞두고 샤갈은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황홀한 기분이 사로 잡힌다. 그림 속 장면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사랑의 기쁨과 행복이 담겨있는 그림,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도 온전히 전해지는 사랑의 감정은 사랑을 다시 시작한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색의 표현은 그 순간의 샤갈이 느낀 중요한 사물들과 순간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그림 속 두 사람은 특이하게도 벨라는 한 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있고, 샤갈은 두 손이 없다. 이것 또한 그에게 중요한 순간인 ‘입맞춤’을 중요하게 보이게 한다. 순수한 사랑의 표현은 어리둥절해 보이는 벨라의 뜬 두 눈에 나타나 있다. 생일날 꽃을 가지고 들어오는 연인의 모습에 얼마나 행복했을까? 고스란히 마음이 전해진다.


나에게 그의 ‘그냥’이 그랬다.

꽃보다, 그의 입맞춤보다 더 달콤하고 행복했다.

“그냥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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