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호흡을 느끼고, 그의 온기를 만나며 치유되고 있었다. 하루가 쌓이고 다른 하루가 쌓일 때마다 단단해졌다.
점점 더 투명해지는 그림들이 쌓여 갔다. 해마다 12월이면 전시회를 하였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해 그림의 컬러들이 크리스마스의 느낌을 닮아 1년을 잘 살아온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그림이 그냥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우리의 하루는 잔잔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 흘려보내며 그냥 행복했다.
하루는 늘 잔잔함과 특별함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그의 시간이 소중했고, 그는 내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주중에는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어 각자의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되었고,
그의 창의적인 생각들이 정교화되고 확장되며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따라왔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는지, 혹은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며, 관계에 연연했던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기도 했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며, 회사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항상 웃는 모습이었고 부탁에는 늘 예스,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을 짜내어 대화에 참여하고 나면 맥이 빠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 후에는 시댁 식구들, 전 남편의 사람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애씀이 부질없는 착각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나: 지금이 너무 편안해, 그동안 난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 관계에 애쓴 거? 그것 또한 분명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거야.
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그럼.. 뭔가 나에게 남은 걸까? 그게 뭘까?
그: 관계를 위해 노력한 거잖아. 돌이켜 생각하니 남을 위한 노력 같겠지만 그 노력이 그땐 너를 빛나게 했을 거야. 사랑받았을 거고, 네가 들어준 수많은 이야기들, 네 공감으로 누군가는 힘을 얻었을 거야.
나: 네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네. 그런 거 좋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 것 같아. 내 그림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이 그래서 너무 기쁘고 작업에 더 몰입하게 되더라.
그: 그래서 아마 네가 오랫동안 관계에 애를 썼던 건지도 몰라.
나: 맞아. 아마 내 삶에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 거야.
그: 누구든 삶에는 터닝포인트가 있어. 오르는 미끄럼틀 같은 거?
오르는 미끄럼틀이라..., 그의 이야기가 맞았다. 내 터닝포인트는 오르는 미끄럼틀이었다. 내려가는 미끄럼틀의 끝을 그가 가볍게 눌러 줘 오르는 모양새에 나는 올라탔다.
내 하루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그가 지지해 주는 미끄럼틀 위에서.
오르는 미끄럼틀 위 내 하루는 피에르 보나르의 테라스 또는 그라스의 테라스작품과도 같았다. 작품은 고요하면서도 활기차다. 따뜻하고 나른한 오후의 한 장면 속 모든 대상에 빛이 닿아 평온함 속에서 빛이 난다.
자연은 원래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내 하루와 닮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멈춰 있는 그림의 장면처럼 영원할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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