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Nov. 2020. Friday
어제 하루 종일 집콕한 내가 한심해 오늘은 눈뜨자마자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이 꼭 이불 같았고
점심때는 같은 학교에서 다른 석사를 하시는 한국인을 만났는데, 영화쪽 일을 하고 싶다지만 한국 영화산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그저 한국은 독립영화 유통이 잘 안된다는 생각에 해외로 왔으며 따라서 여기서 평생 살고 싶다고 하는 대학을 갓 졸업한 분이었다. 한편, 독립영화 유통이 취약하다는 건 조사가 충분히 되지 않은 채 본인의 감에 의지한 판단이었고, 영화 팬이라면서 그 수많은 국내 영화제를 한 번도 안 가봤으며 한국에 포진된 각종 시네마테크, 영화상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아시아 영화학교 등 수많은 영화 관련 기관들 그 어떤 것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공부의 어려움을 의지하고 나누고자 내가 주선한 만남인데 이 관계를 통해선 해소가 안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여기서 알게 된 또래 유학생 중 그저 돈이 많아서 유학을 온 느낌의 사람을 아직 못 봤는데, 그게 오늘인가 싶을 정도로 실망이 좀 컸다. 내가 한국이 생각보다 영화 산업이 잘 구축되어있고 각종 영화제 프로그래밍은 놀라울 정도로 사려 깊고 다양하다니까 자기는 한국에서 일할 계획이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한다. 속으로 해외에서 일하기가 얼마나 하늘의 별따기인데 대체 무경력에 비영화 출신 학사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싶은 의문이 들었으나 꼰대가 될까 봐 꾹 참았다. 리딩 리스트에 대한 어려움을 내가 얘기할 때는 본인은 그냥 하나도 안 읽었다고도 해서, 역시나 이 만남은 일회성으로 끝나겠구나 싶었다.
실망스러운 만남 후엔, 커피가 땡겨 근처 카페로. 학교 근처 라이온 커피.
오늘 저녁엔 필립포와 샨냐와 피자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나는 치킨 토핑을 제공했는 데 원래 이탈리아 피자엔 치킨 안 들어가는데 그냥 봐준다며 ㅋㅋ 샨냐는 왼쪽처럼 파프리카와 참치를 가득 넣은 피자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마트에서 사 온 감자 굽는 중.
둘 다 박사생이라 그런지 얘네랑 얘기하면 워낙 다양한 주제를 심도 깊게 나눌 수 있어 시간이 훅 지나간다. 이 날도 7시에 식사를 시작해 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간 시간은 무려 11시였다. 이 날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필립포가 관우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한국인은 둘 밖에 모르지만, 너네를 보면 한국인은 파시스트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엔 파시스트라는 용어가 가진 느낌 때문에 부정하고 싶었으나, 생각해보면 정말 우린 그런 면이 꽤 있는 것 같다. 내가 당장 어릴 때 받은 교육만 해도 단일민족을 강조했으며 우리나라는 이른바 '국뽕' 컬쳐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특히 유튜브에 넘쳐나는 리액션 비디오는 정말 creepy 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우리의 음식이나 콘텐츠를 백인이 경험 하며 감탄하는 영상을 대체 왜보냐는 거다. 특히 나와 관우는 각자 유학 경험도 이미 있고 해서 둘 다 한국을 꽤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많이 봐온 축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관우에게서 그런 점을 발견한 게 놀랍고 무섭기도 했다.
한편, 특히 한국 남자들에게는 공통의 군대 경험이 있어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다가 필립포 쇼니아 둘 다 눈을 반짝이고 의무복무제를 너무 궁금해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특히 이 때문에 파생된 복학생과 고무신 거꾸로 신는 얘기등은 너무 재밌어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여기는 이 군복무 문화를 내가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그렇고, 한국에서 일본 여자애들을 친구로 사귀었을 때도 그렇고 (심지어 이 때문에 일본 여자 애들은 한국 남자들이 남성적이고 멋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외국에선 남녀 불문하고 다들 얼마나 신기해하는지 다들 알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