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Feb. 2023
내가 일하는 미술관에서는 영국의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이자 그로 인해 기사 작위를까지 받은 케네스 그렌지(그레인지,그란지) Kenneth Grange 의 아카이브를 관객에게 보여줄 전시를 계획 중이었다. 이미 미술관으로 가져온 몇가지 아카이브 자료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 팀에서 이전에 일하던 큐레이터들에 의해 이미 셀렉된 제한된 자료들이었다. 그런데 미술관 아카이브팀의 동료가, 아카이브가 전체적으로 대충 어느 정도 있는 지도 볼 겸 현재 그의 자료를 임시 소장하고 있는 루시에게 갈 예정인데, 너도 올래? 하는 제안을 한거다. 루시는 케네스 그레인지 경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작가였다. 자서전인 만큼 미술관 만큼보다 사실 자료가 더 급히, 많이 필요해 모두 임시 소장하고 있던 것.
검색 결과와 같이 케네스 그렌지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everyday objects 를 디자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분이다. 주전자, 냄비, 선풍기, 드라이기 등 뿐 일상의 오브제 뿐 아니라 영국의 고속열차, 기차 그리고 뭐 그냥 정말 잡다한 모든 디자인들을 어마어마한 양으로 하셨다.
런던에서 기차를 1시간, 기차역에서 택시를 30분 정도 타고 도착한 루시의 집. 집이 너무 예뻤다.
이 정도로 예쁘고 아늑한 집이라면 이렇게 런던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살더라도 괜찮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아카이브 탐방. 작업이 워낙 많다보니 아카이브 양도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그런 노트랑 스케치들 다 보관하고 계셨으니, 우리 미술관 업종 사람들에겐 너무 감사할 따름.
이런 베이직한 주방 용품들도 사실 생각해보면 다 산업 디자인이다. 누군가의 크레이티브함이 단순 기기의 발명(쓰임의 발명)과 함께 기여되었다는 점. 버튼 하나를 생각할때도 스케치가 많았다. 어떻게 배열할 지, 어떤 모양의 버튼을 만들지.
이렇게 쇼윈도우나 팝업 스토어 공간 디자인도 하셨음.
그렇게 한참 셋이서 아카이브에 파묻혀서 신나하는데 루시가 점심을 준비해주었다. 간단해보이지만 맛있었다. 아보카도 래디시 샐러드, 후무스, 석류가 듬뿍 뿌려진 연어, 그리고 러시아식 팬케잌. 친구네 홈파티를 가서 얻어먹고는 본인도 이게 좋아서 따라한 거라고 한다. 팬케잌을 빵/밥/쿠스쿠스 용도로 연어와 샐러드, 그리고 요거트 소스와 먹는 방식이었는데 맛있었다.
점심 먹고는 루시 집 구경. 이렇게 책 프레임한 거 넘 아이디어 좋은 듯.
그리고 갑자기 연결된 케네스 그란지경과의 전화. 93세라는 연세가 전혀 안느껴질 만큼 여전히 총명하고, 위트 있고, 호기심과 열정으로 눈이 반짝거리셨다. 본인은 지하철을 탈때면 반대편에 앉은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어떤 소지품을 가졌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늘 상상하고는 한다고. 본인의 삶을 서술할 작가인 루시와도 늘 통화만 해오다, 이렇게 그녀의 집을 보는 건 처음인데 재밌다고 하셨다. 우리 뒤로 살짝 보이는 집의 가구와 물품들이 벌써 그렇게 눈에 들어오셨나보다. 그렇게 주변 소품에 대한 관심이 높고, 사람에 대한 애정도 높고, 아,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작가 모습 그대로셨다.
퇴근하고는 SOFT&HARD 라고, 조각하는 친구의 Queer 관련 수업에서 파생된 전시를 보러 버몬지로 갔다.
진짜 팔불출이어서 그런 거 아니고 진심 학우들 중 친구 작품이 제일 좋았다. 얘꺼랑 또 다른 괜찮은 애 작품 두개만 딱 갤러리 쇼윈도쪽에 배치해두었더라.
근처 온 김에 화이트 큐브 버몬지. 솔직히 이번 전시는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가까이서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