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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10. 2019

우리 사회는 왜 피로한가?

한병철 [피로사회]

우리 사회는 왜 피로한가?


현대사회의 단순하면서도 원인불명이고, 일상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현상에 대해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스러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
과도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한병철의 논리는 세 단락이다. 


첫째, 패러다임의 변화. 

우리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규율사회가 부정성의 패러다임(하면 안된다. 해야 한다.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진 시대-한병철은 이를 면역학적 패러다임으로 일컫는다.)이라면 성과사회는 긍정성의 패러다임이다. 다만, 규율사회와 성과사회의 궁극적 목적은 여전히 생산성의 극대화이다. 


둘째, 자기착취

성과사회의 조동사 "할 수 있음"은 완결과 끝이 없는 무한정한 노동을 유도한다.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뒤섞여버린 노동기계가 불과하다. 이러한 과잉 긍정, 과잉 노동, 과잉 활동으로 인한 결과는 탈진, 고갈, 낙오자, 자폐적 성과기계, 무젤만(나치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수감자들)에 불과하다. 


셋째, 사색

성과사회의 이러한 폭력은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의 면역학적 방어 시스템(이질성,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는 극복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사색이다. 자극에 대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중단하고, 느리게 생각하기, 무위, 거부하기, 반성, 자각,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 등이 필요하다. 





근래 '멍때리기 대회'나 도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와 같은 동질적 맥락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단순한 유행의 흐름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피로함을 품고 있다.


불현듯 엊그제 학교에서 느꼈던 심심함이 애사롭지 않게 복기된다. 나는 9월, 10월 동안 인성보고서 작성에 온 시간을 쏟아부었고, 엊그제에 막 작성을 마쳤다. 홀가분했어야 했는데, 것보단 심심했다. 이젠 아이들을 하교시킨 이후에 무얼해야 하나 허전함 비슷한 것을 느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착취시켜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셈이다.


굳이 스스로를 노동시킬 필요가 없다.

자기착취가 계속된다면 종국적으로는 우울함이나 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자폐적 성과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공허함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하는가?

한병철의 문장으로 생각을 곱씹어 본다. 


무언가 생각할 힘밖에 없다면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대상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기Nacheken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Foredenken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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