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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Nov 06. 2019

지는 게 죽기보다 싫으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분하다.

어제 배드민턴 클럽에서 몇 차례 박살이 났다. 특히 짜증 나는 것은 같이 다니는 형한테 3번이나 졌다는 거다. 같이 다니는 형은 나보다 한 살 위인데, 복식 파트너이자 경쟁자 관계이다. 서로 잘한다고 우기는 사이인데 3번이나 내리 졌으니 자존심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나는 지는 게 죽기보다 싫다.

사실 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다. 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보니깐 스님도 지는 거 싫어하시더라. 지기 싫은 것은 진화의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뭐 생존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사냥도 잘해야 하고, 싸움도 잘해야 하니깐 막 틀린 소리도 아닌 것 같고.


어쨌든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 정도가 좀 심하다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여러 상황에서 여러 형태로 그릇되게 드러난다. 운동이 상황이라면 쉽게 승부에 승복하지 않다거나, 지고 나서 멘털이 깨져버리는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사람과 사소한 의견 충돌이라도 있다거나 하면 늘 언쟁이 돼버린다. 심지어 운전 중에도 추월을 쉽게 허락하지 못한다.


교실에서 가만 보면 아이들 싸움의 원인도 대부분 '지기 싫어서'다.

말싸움에서 지기 싫어서, 친구와의 몸 다툼에서 지기 싫어서, 공부로 지기 싫어서 등등 서로 지기 싫으니까 다툼이 쌓이고 쌓여 싸움으로 번진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내가 지기 싫어하는 최고 대마왕이니 지적을 하기에 면이 안 선다.


이대로는 안된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지나치게 지기 싫은 마음으로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다. 이 마음은 분명 해결책이 필요하다. 자기 계발서를 뒤적거리기엔 여유가 없다. 모든 생각을 멈춘 재 오로지 해결책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지기 싫어하는 마음 자체는 내버려 둔다. 그 마음은 잘못이 없다.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성장의 장작이 되기도 한다. 잘 지는 법을 생각하기로 한다.


지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요동친다.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워야 한다. 평온? 평온의 의미를 찾는다. <조용하고 평안함> 평온은 결과다. 지기 싫은 마음이 어떤 요소를 만난 뒤에 찾아오는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듯싶다.


계속 생각한다.

생각나지 않으니 멋지게 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음 그 사람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뭐랄까... 그렇다. 그 사람들은 쿨하다. 뭔가 실마리를 찾은 듯싶다. 그들은 어떻게 쿨한가? 잠시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다.


인정한다.

그렇다. 그들은 인정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타인을 인정한다. 인정이다. 인정이 답이다.


따져보니 인정은 참 마법 같은 마음이다. 

나의 그릇된 문제들에 인정을 차근차근 삽입시킨다.

 

나의 실력이 부족함을 인정한다.

내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한다.


너의 실력을 인정한다.

네가 잘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네가 맞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네가 맞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인정은 굴복이나 포기와는 엄연히 다르다.

인정은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뜻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때때로 진실을 만나는 것은 두렵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사실의 '나'는 더 초라하고, 형편없을 수도 있으니. 그러나 나는 나아갈 존재다.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의외로 해결책을 빨리 찾았다. 

가끔은 남이 써놓은 자기 계발서보다 스스로 생각하여 정답을 찾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다짐은 반복된 실천을 통해서 나의 행동양식이 된다. 이젠 분노를 잠재우고 어제의 나와 형을 인정한다. 실천할 때다. 


형, 형이 나보다 배드민턴 잘 쳐!

지금으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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