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함에 대하여

아이들보다 스스로가 더 중요한 당신들에게.

by 당신들의 학교

춘천의 현장체험학습 사망사건과 관련한 교사단체들의 움직임은 몇 번인가 다루었다.


해가 바뀌고 나니, 여기에 대한 통계도 나왔는데





비록 서울에 국한된 조사이긴 하지만, 51%라는 수치는 충격적이다.


현장체험학습이 의무도 아니고, 코로나 등 여러 사정에 따라 가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최근의 현장체험학습 거부를




비겁한 보신주의

피해자 정체성을 이용하여
책임과 업무를 줄이는
전략적 단체행동



이라고 본다.


뇌피셜로 소설을 써보자면,


코로나 기간에 현장체험학습 금지가 교사들에게는 '너무 좋았던 게' 아닐까?


'현장체험학습이 없다'는 단체적인 경험은 현장체험학습 거부운동에 있어 매력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 같다.


언론에서 다루듯 교사의 안전지도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이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위축한 것이 아니라,




교사의 유죄판결을 지렛대 삼아
하기 싫었던 업무와
그에 따른 책임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속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판결의 성격과 이후 현장의 반응이 맞지 않는다.


해당 사건은 단순한 ‘운이 나쁜 사고’가 아니라, 법원이 교사의 중대한 과실을 인정한 사안이었다.


○교사는 학생들 대열의 선두에서 인솔하면서 뒤를 자주 살펴야 하는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가장 처음 한 번만 뒤를 확인하고 이후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고 당시 다수의 학생(피해자인 포함 해서 5명)이 대열에서 벗어나 일정 거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는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버스에서 하차한 후 이동하는 거리(약 20~30m 정도)와 나이·활동성을 고려하면
일부 학생이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버스가 일시 정차 상태였기 때문에 곧 차가 움직일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교사가 이를 미리 고려해 학생 안전 확보를 강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후 현장에서는 “이제 아무것도 못 한다”, “모든 체험활동이 위험하다”는 식의 전면적 위축 담론이 급격히 퍼졌다.


중대한 과실이 문제였던 사건을, 모든 교사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으로 일반화하는 과정에는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다.


이것은 안전 강화를 위한 합리적 대응이라기보다, 활동 자체를 접기 위한 명분 축적에 더 가까워 보인다.




둘째, ‘학생 안전’이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라 방패처럼 사용되고 있다.


진짜로 안전이 목적이라면 나와야 할 말은 이런 것들이다.


학생 인솔 시 주의사항 공유

안전 지도의 기록방안 개발

보조 인력 확보 방안

사전·사후 점검 시스템 강화

그런데 현장에서 먼저 나온 결론은 “하지 말자”, “없애자”, “학교 밖 활동 중단”이었다.


위험을 관리하는 쪽이 아니라 위험이 따르는 업무 자체를 제거하는 방향으로만 논의가 흐르는 것은, 안전 담론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처럼 쓰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셋째, 그동안 교사들이 ‘부담스럽다’고 말해왔던 업무와 정확히 겹친다.


소풍, 수학여행, 수련회, 체육대회, 축제, 체험학습.


이 활동들은 학생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학교 경험이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사전 계획

행정 처리

인솔 책임

사고 시 민원 대응


까지 이어지는 나름 고강도 업무다.


즉, 오래전부터 “힘들다”, “책임이 너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영역이다.


이번 판결 이후 가장 먼저 축소·폐지 논의가 나온 분야가 바로 이 지점이라는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넷째, ‘직업상의 책임’에 대한 태도 변화가 보인다.


모든 직업은 권한과 함께 책임을 진다.


의사는 오진 책임이 있고, 건축가는 설계 책임이 있고, 변호사는 변론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하니 수술 안 한다”, “사고 날 수 있으니 설계 안 한다”로 가지는 않는다.


대신 기준을 세분화하고, 시스템을 보완한다.


그런데 일부 교육 현장의 대응은




책임이 생길 수 있으니
그 활동 자체를 안 하겠다




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이것은 책임을 감당하는 정상적인 직업인의 태도라기보다는, 책임이 따르는 영역을 아예 걷어내려는 유아적 태도에 가깝다.




다섯째, 학생의 권리와 교육의 본질은 논의의 중심에서 사라졌다.


체험활동, 야외학습, 공동행사는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사회성 학습

협동 경험

실제 맥락 속 배움

이라는 교육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지금 논의의 중심에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처벌받지 않는 구조”가 놓여 있다.


학생의 경험과 성장 기회는 후순위로 밀리고, 교사의 법적 리스크 최소화가 최우선 목표처럼 보이는 순간, 공교육의 방향은 이미 비틀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아이들을 더 안전하게 하려는 움직임”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부담이었던 업무와 책임을 줄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난 것에 가까운가.


판결을 계기로 학생 인솔과 통제의 프로토콜을 정하고 표준화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대신, 교육활동의 범위를 통째로 줄이는 쪽으로 간다면



학생은 피해를 입고
교사들만 노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사교육과 비교되고 공교육의 가치와 효용에 의문이 들 때마다 교사들은



교사의 존재이유는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며
공교육의 가치는 사교육과 다르다



는 점을 역설해 왔다.


현장체험학습은 단순한 행사 하나가 아니다.


교사들이 그동안 사교육과 공교육을 구분하며 내세워 온 공교육 고유의 가치가 가장 집약된 영역에 가깝다.


교실 밖에서 학생을 실제 세계와 연결하고, 집단 속에서 행동을 배우게 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판단과 책임을 경험하게 하는 것.


이건 문제집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해 온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영역이 “위험하다”, “책임이 무겁다”, “법적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정리된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 전달은 이미 사교육이 더 촘촘하다.


진도 관리, 문제 풀이, 성취도 향상 — 이 영역에서 공교육이 압도적 우위를 가진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은 현장 교사들 스스로도 인정해 온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득해 온 근거는 “우리는 학원과 다르다”는 점이었고, 그 다름의 핵심이 바로 책임을 동반한 생활지도, 공동체 경험,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총체적 교육이었다.


그런데 그 ‘다름’이 부담이 되는 순간마다 하나씩 후퇴한다면, 공교육은 점점 사교육과 구별되는 고유 영역을 스스로 지워가는 셈이 된다.


현장체험학습을 거부하는 흐름은 단일 사안이 아니라 교육활동 전반에 대한 태도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생활지도는 민원 위험이 있으니 소극적으로

행사 운영은 사고 가능성이 있으니 최소화

학생 간 갈등 개입은 분쟁 소지가 있으니 회피

학부모 상담은 민감하니 형식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축소가 이어진다면, 공교육이 주장해 온 “지식 전달을 넘어선 역할”은 구호로만 남고 실제 현장에서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다른 이유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여전히 공교육의 특별한 가치를 말할 수 있는가?


책임이 따르는 영역을 줄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모순이다.


공교육의 가치는 말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까지도 끝까지 붙들 때 비로소 증명된다






이쯤에서 "제도적으로 충분히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반론이 예상되는데, 이것 또한 책임을 피하고 스스로 편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본다.


실제로 교사는 형법상 과실치사상의 요건만으로 부족한지 특별한 면책 조항까지 적용받고 있다.


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의 면책조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명확한 면책의 기준을 세세하게 정하는 것은 기준에만 부합하면 나머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무책임한 부작위를 유도할 수 있어 사용하기 위험한 방식이라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고학력 직업집단인 교사들이 이를 까맣게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교사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그들의 푸념에 대해 말하자면.



첫째, 제도가 완벽히 보호하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도, 간호사도, 건설기술자도, 운송 종사자도 업무 중 사고가 나면 법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의료사고, 산업재해, 안전사고는 언제든 형사·민사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직군들이 “국가가 우리를 완벽히 보호해주지 않으니 수술을 줄이고, 설계를 줄이고, 운행을 줄이자”라고 하지 않는다.


위험이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원래부터 책임과 직무가 함께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교육만 예외여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둘째,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교사 개인의 안전만을 의미하고 있다.


교육에는 늘 두 축이 있다.


교사의 근무 조건
학생의 학습권


그런데 지금 논리 구조는 오직 하나다.




교사가 위험하다 → 활동을 없애자




여기서 학생이 잃는 경험, 배움, 성장 기회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제도 비판이라기보다, 교육의 중심이 학생이 아닌 교사라는 선언에 가깝다.



교사만 무사하면 돼.




셋째, 직업의 전문성은 권리 요구 이전에 책임 수행으로 증명된다.


어떤 직업이 사회로부터 보호와 존중을 받는 이유는
“우리는 어렵고 위험해도 맡은 일을 해낸다”는 신뢰 때문이다.


그런데 책임이 생길 가능성이 보이자 “이건 못 한다, 저건 안 한다”는 흐름이 강해질수록, 사회는 교사를 더 보호해야 할 직업이 아니라 위험을 회피하는 집단으로 보기 시작한다.


결국 보호 논리는 오히려 교사의 전문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째, 지금의 반응은 ‘구조적 개선 요구’라기보다 ‘업무 축소 정당화’에 가깝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은 보통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한다.


하지만 현재의 흐름은


“이 일을 안 하려면 무엇을 근거로 삼을 수 있는가”


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태도의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정리하자.


당신들은 비겁하다.


fin.



매거진의 이전글학교의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