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지식을 구걸해야 하는 미친 시스템
어느 조직이건
신입의 고충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만
교행처럼
'이상하게' 어려운 조직이 있을까.
A 씨는 이번에 합격하여 1월 발령 예정이다.
로 시작되는 예를 들어 보겠다.
A 씨는 교행을 '워라밸'로 대표되는 공무원의 인기직종으로 알고 있었는데, 합격하고 나서 들려오는 소문에 조금씩 불안한 맘이 들던 참이었다.
A 씨는 12월 26일인데도 아직 본인의 발령지를 모른다.
지난 12월 한달 간은 교행에 대해 들었던 여러 소문 중 하나가 사실로 확인되는 기간이었다.
1월 2일에는 출근을 해야 하는데, 12월 26일인 오늘, 아직 공지에 발령 소식은 없다. A 씨는 본인이 합격한 것이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워지지만, '원래 교행은 발령일에 임박해서야 발령지를 알려준다'는 공무원 카페의 이야기에 애써 괜찮을 거라 생각해 본다.
12월 26일 밤 10시
이것이 A 씨가 발령지를 알게 된 시각이었다.
발령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초등학교였다.
A 씨는 발령받은 초등학교까지 가는 대중교통을 검색하고, 주변 동네 로드뷰를 보고, 혹시 자취할 만한 곳은 있는지 어떤 학교인지 알아보느라 밤을 지새웠다.
A 씨 학교에 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다
다음날인 27일.
A 씨는 낯선 지역의 발령지이므로 한번 찾아가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리 학교에 전화를 하자 편한 시간에 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교통수단과 예상경로,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플랜 B를 짜느라 새벽까지 휴대폰을 본 시간이 무색하게 버스는 제시간에 왔고, 아무 문제 없이 초등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노인에게 우물쭈물 여기 발령받았다고 하며 고개를 서너 번 숙이고 학교에 들어서자 텅 빈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공사를 하는 모양인지 소음이 계속되는 와중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상한 경험을 하며, 학창 시절 기억을 더듬어 행정실이 있을만한 곳으로 가자 행정실 문패가 보였다.
행정실에는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말도 안 되는 두꺼운 서류를 머리높이까지 쌓아두고는 서류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고 있었고, 한 명은 '사장님'이라는 사람과 뭔가 통화 중이었다.
행정실의 두 사람은 친절했지만, A 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지는 못했다. 업무포털에 접속하기 위한 아이디 신청서를 한 장 적은 것이 A 씨가 학교에 가서 한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다.
경황없이 몇몇 설명을 듣는 와중에 A 씨가 알게 된 것은, 3주 정도 후에 '감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것이었고, 받은 것이라고는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건네준 a4지 서너 장의 인수인계 편지(?)였다.
불안한 지옥의 시작
신정연휴 동안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A 씨는 1월 2일 첫 출근을 무려 7시 반에 했다. 잘 모르는 동네라서 교통편이 불안해서였는데, 실질적으로 인수인계를 받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번과는 다른 경비아저씨 같은 노인분께 또 고개를 숙이며 발령을 받았다고 하니, 열쇠가 어쩌고 하면서 행정실 문을 열어주신다.
아무 할 일도 없는 행정실에 오두카니 앉아 있자 의외로 금방 행정실장이 도착한다.
인사를 하고, 이제부터 뭔가 시작되려나 했는데, 아까의 경비아저씨가 오더니 실장과 같이 뭔가를 보러 간단다. 무언가가 얼어붙었다가 녹아서 문제라는데, 20여 년을 살면서 처음 듣는 단어였다.
인수인계 편지(?)를 봤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컴퓨터를 켜서 이것저것 보는데 수많은 이름들과 어디서 들어는 봤는데 뭔지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빼곡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수당', '성과급', '보험료'등을 보았는데, 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엑셀 함수는 왜 제각각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로는 폭풍 같은 (A 씨 혼자만) 시간.
아이디를 발급받아 로그인하는데 2시간을 끙끙대었고 (실장은 자신은 그런 거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 와중에 교장실과 교무실에 가서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지는 않았다)
실장이 문서함을 보라고 해서 문서함을 찾는데 30분의 시간과 동기들과 수십 줄의 카톡이 필요했다. (실장은 다른 학교에 물어보라 했다)
점심을 먹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인데,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어 손발이 벌벌 떨릴 지경이라 아주 빠르게 먹었다.) 다시 돌아와 자신의 업무분장에 적혀있는
급여, 지출, 징수, 수입, 세외, 시설, 기록물, 물품
에 대해 뭐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업무포털과 교육청 홈페이지를 열심히 뒤졌다
눈이 뻑뻑해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매뉴얼을 찾아서 다운로드해 놓고 한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교무실에서 전화가 와서는 '왜 아직 문서를 접수하지 않느냐'고 한다
"실장님 문서를 접수해야 한다는데요?"
"아, 행정실 문서는 A 씨가 접수해야지. 아직 접수 안된 건 행정실 거니까 접수하세요"
"문서를 접수하는 게 어떤 건가요?"
"..."
"..."
"..."
"..."
"어! 문서함 있잖아.. 클릭해서 접수하면 돼"
"... 어... 접수 누르니까 뭐가 많이 골라야 되는데요? 공..람? 사람도 골라야하고"
"..."
"..."
"... 주변 학교에 한번 물어봐요"
"... 네에.."
A 씨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295번쯤 고민한 뒤에 30번쯤 망설이다 마침내 주변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네! ㅇㅇ초등학교 행정실입니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거기에 문서 접수하시는 분 계신가요?"
"네? 누구요?"
"문서...접.. 접수하시는 분이요"
"문서 담당자요? 전데요?"
"아! 안녕하세요. ㅎㅎ 여기는 ㅇㅇ초등학굡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죄송한데 뭐 좀 물어볼게요... 제가 신규라서"
"아~ 네네 물어보세요"
"그 문서함에 2026년 에너지 어쩌고 하는 거요"
"네네 에너지 효율성 강화 자체 체크리스트요"
"네, 그거... 접수 어떻게 하셨어요?"
"네?..."
"..."
A 씨는 며칠 동안이나 이런 일을 반복해야 했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미친 사람처럼 매뉴얼을 찾아 헤매고, 그러도 안되면 실장에게 물었다가 (대부분 주변학교에 물어보라고 한다) 295번의 고민과 30번의 망설임 후에 다른 학교에 전화해서 뜬금없는 질문 하기.
하루 종일 바쁘게 뭔가를 하고, 머리를 굴렸는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A 씨는 불안해서 이제 잠도 오지 않았다
아주 큰 불행은 작은 불행을 잊게 만들지
그러다가 1월 6일. 동기들의 단톡방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급여작업이었다.
9일까지 교육청에 제출해야 하는 급여작업의 매뉴얼은 벌써 다운로드해놔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A 씨지만, 동기들의 사례를 듣고 있자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중간에 휴직, 복직, 결근, 병가, 조퇴, 지각, 징계, 육아시간 사용 등등의 변수와 1번 형태와 2번 형태의 공무직에 단속적 근로자와 봉사자, 시간제 근무자 등등 상상하지 못한 온갖 종류의 근로형태와 변수가 단톡방에 있었다.
그리고
질문만 있고 답은 없었다.
콜센터와 주변학교에 물어보라는 걸로 결론이 나기 일쑤였는데, A 씨는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결국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신규라고는 하지만, 경험 많은 선배에게 물어도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적어도 이 급여업무는 개인에게 맡길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종의 근로형태와 수백 가지의 급여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있는데, 이를 단 한 사람이 (그것도 신규나 저연차 공무원이) 책임지고 제대로 해내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오늘도 케듀파인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20분째 기다리고 있는 A 씨는 3일째 야근 중이다.
일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일을 배우느라
이 미친 시스템은 당장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