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 당신 편은 없다. 적이 아니면 다행일 뿐.
교행을 준비하시는 분들? 혹은 교행에 입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
교육행정직의 세계를 일반적인 직장생활이나, 흔히 상상하는 공무원 조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일선 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교행은 딱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조직에 속하며(따라서 각 기관의 재량이 아주 넓게, 정말 넓게 적용됩니다), 구성원 수로는 교사와 공무직이 양분하는 학교에서 단 3~4%를 차지할 뿐입니다.
너무 작은 인원 수와 규정되지 않은 유령 같은 존재감 때문에 교육행정직의 업무범위는 학교장 맘대로입니다. (그나마 10여 년 전에 '규정에 따라'라는 문구가 초중등 교육법에 포함되어 표면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시키면 그게 뭐든 해야 한다'는 관습은 여전합니다)
학교장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행정실에 일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학교는 업무를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기도 합니다만, 다수결에서 절대로 불리한 것이 교육행정직입니다. 남들이 떠넘기는 일들을 맡지 않으려면 잔뜩 날을 세운 고슴도치처럼 하루 종일 화를 내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날을 세워봤자 소용이 없기도 한 것이, 교사는 단일직업 최대인원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직업단체이고, 공무직은 전통적인 대형노조들 가운데서도 가장 자주, 가장 격렬하게 시위와 파업을 하는 노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이겨내기는 역부족이죠.
간단한 예로는 교직원에 대한 건강검진 안내가 있습니다. 보건교사회에서 전국의 보건교사에게 교직원 건강검진 안내는 보건교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안내했고, 이것은 학교장의 재량이나 교직원들 간의 민주적 합의(?)등으로 행정실의 업무로 굳어졌습니다. 네, 바로 너님이 할 일이죠.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단체는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일을 하며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실제로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잘못 알고 있습니다. (교육부 소속 공무원과의 대화 중, 그들이 학교 행정실에는 공무원이 6-7명은 있는 줄 알고 있더라라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시설관리를 위한 사설관리직 공무원은 대부분 미충족 상태이며, 상황이 이렇게 된 지는 십수 년이 넘었습니다.
따라서 저연차 교행직은 불안한 구조물,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기자재와 전기, 수도 시설에 둘러싸인 채 최소한 1.5인분 또는 2인분의 업무를 소화해야 합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특집기사로 다루어지는 교사의 행정업무경감 또는 업무경감 이슈는 대부분 교행직의 업무부담으로 돌아옵니다.
본연의 업무, 교권수호, 교권보호, 교사의 행복 등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여러 캠페인은 지속적으로 교행직의 업무부담을 늘리고 있습니다. 특히 너님. 저연차 교행말입니다.
교사들의 '해줘'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는 통에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종류는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80여 종이 넘는 직종의 사람들이 학교에 근무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들의 급여나 연가보상, 성과급, 명절휴가비, 세금처리 및 4대 보험 관련 업무는 놀랍게도 '모두 다릅니다' 그걸 역시나 너님, 저연차 교행이 '알아서' 해나가야 합니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직무교육이 절실한데,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은 손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업무에 관련한 문의사항과 매뉴얼에 대한 수요는 폭발하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되자 끔찍한 시스템이 생겨버립니다. 교행을 비롯한 교육청 일반직 노조가 주관하는 '업무단톡방'과 노조가 발간하는 '업무매뉴얼'입니다.
교육청에 직무교육을 요구하고, 업무미숙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도록 압박해야 하는 노조가 교행들의 업무매뉴얼을 만들고 업무 관련 문의 콜센터 역할을 하고 있으니, 노조 조합비가 처우개선에 쓰일 수가 없습니다. 지역에 관계없이 노조에 조합비의 결산내역을 묻는 조합원을 노조가 징계하고 고소하는 경우는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힘이 없어 그런 건지, 의지가 없어서 그런 건지 교육청 일반직 노조는 10여 년 전에 병설유치원 겸임수당을 얻어낸 것을 최대의 치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었음 이것도 없었어 인마!'라고 으스대는 꼴인데, 솔직히 너무 옛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기간 동안 교사와 공무직이 얻어낸 것에 비한다면 '개평받는 것처럼' 얻어낸 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의심도 듭니다.
이렇게 시스템은 지옥 같은데,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인간관계'는 어떨까요?
일단 알아두셔야 하는 것은, 너님의 편은 없다는 겁니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나 행정실장은 너님의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겨 이를 해결하고자 주위에 이야기를 하면 듣게 되는 대답은 보통 '찾아봐라', '전화해 봐라', '다른 학교는'입니다.
이것은 동료가 마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교행의 업무는 규정이 너무 빨리 변하고, 신설되는 것이 많으며, 특히나 저연차 교행이 맡는 업무는 교직원이나 학생 개개인에 맞춘 회계업무인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에게 문제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동료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교직원은 어떨까요? 교사나 공무직이요.
그들은 기본적으로 '민원인'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인 성향은 '문맹이거나 문해력이 아주 낮은, 몸이 불편한 어르신'정도입니다.
택배나 우편물 배송, 사무집기나 물품등의 이동/설치/보수/관리, 전기가 들어가는 기자재와 관련한 사항, 돈과 관련된 행정처리용 서식, 냉난방 및 위생 방역 방재에 이르기까지 '알잘딱깔쎈' 해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경험과 주관적인 평가이므로 신뢰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교직원 전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학교 급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고등으로 갈수록 프로페셔널하면서 사무적이라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초등학교의 경우, 교장실에 가서 우는 사람이 1년에 서너 명 이상으로 매우 이상한 분위기입니다. 교사를 절반으로 줄여도 학교가 돌아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일과시간에 노는 교사가 많고, 금요일이나 공휴일 전날 오후 2시경에는 주차장에 차가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힘들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하는 교사는 대부분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초등학교의 분위기는 '누가 누가 더 힘든가', '누가 누가 더 모르나', '누가 누가 더 잘 우는가'를 겨루는 분위기차럼 느껴졌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씩씩하게 일을 해나가는 소수의 교사들은 보통 일주일에 2,3일 이상 학교에 남아 야근을 합합니다. 업무가 그들에게 몰리는 거지요. 그러니까 교사의 행정업무가 많은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행정실은 너무 인원이 적으므로 평균적인 분위기랄게 없습니다. 그냥 너님이 그 행정실의 분위기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두세 개 정도의 큰 업무는 완전히 손을 놓게 될 겁니다. (보통 기록물, 물품 등입니다) 물론 그걸 안 해도 일은 많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느낄 텐데, 교사와 공무직에게는 능력에 비해 일을 적게 시키고, 교행에게는 능력밖의 업무도 그냥 맡겨버리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앞으로 석 달 뒤에 4억 원을 들여 본관의 증축공사를 해야 합니다. 당신은 공사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일을 주관해야 합니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일반 교사 누구도 당신을 돕지 않을 겁니다. (아마 방학 중에 공사를 할 것이라, 그들은 출근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일을 잘못 진행하거나 절차상의 문제가 있거나 행정서류 등이 미비하면 감사에 걸려 징계도 받지요.
정리하자면,
지위는 낮고 불안정하며, 일은 미친 듯이 많고, 동료는 믿을 수 없거나 비정상. 노조는 역할을 못하고 그 와중에 여러분은 능력 밖의 일까지 알아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일 문제는 무엇이냐면
사소한 것들입니다.
사소하기 때문에 더 화가 나고 참기 어렵습니다.
일이 더 힘들고 어려운데 급여가 작은 부분은 교행이 아니더라도 많이 찾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교행은 그래도 공무원인 데다 퇴근시간 등의 메리트가 있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소한 부분은 참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해줘'라는 것인데요.
본인은 할 줄 모르고, 안 해봤고, 이런 거(?)는 자기 업무가 아니며 ㅇㅇ가 그러는데 다른 학교에서도 다 행정실에서 하더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될 겁니다.
여러분. 도망치세요.
행정복제센터의 진상민원인은 어쨌거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학교의 '해줘' 민원인은 '같이' 근무합니다.
여러분. 교행은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