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는 걸까.
최교진 교육부장관에 대한 기사를 또 접하게 되었다.
교육부의 수장이라는 것이, 한평생 어떤 소신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 마침내 차지하는 자리라기보다는 '바꿔야 하는 시점에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되는 자리라서 교육부 장관의 언사가 대단한 철학이나 고민을 통해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기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교육부장관의 입을 빌어, 교육부라는 단체의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교육부장관이 바뀐다 하더라도 교육부라는 유기체는 성격이 크게 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부분이 내가 절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1. 공교육에 대한 국가책임강화 - 교사보호
뭐, 좋은 말이고 당연한 소리이기도 하다.
공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으니, 여기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얘기라면 환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뒤가 좀 찜찜하지?
언제부터 국가가 일반 시민인 학생을 보호하는 것보다 공무원인 교사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하게 되었는가.
공무원은 어떤 존재인가.
자긍심이 있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두들 (아마도 교사는 빼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자신보다는 시민이 우선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교육부 장관의 말, 아니 교육부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공교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하여..
교사를 보호하겠다
교육부의 인식이 어떤 것인지 저 문장으로 알아보자.
많은 직업군은 '주요 상대'라는 게 있다.
위의 표를 보면서 같은 문장을 만들어보자.
소방업무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여 소방관을 보호하겠다
경찰업무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여 경찰관을 보호하겠다.
어? 말이 되는데?
심지어 옳은 이야기다!
소방관과 경찰의 업무상 피해를 줄이도록
국가가 나서는 것이 옳다!
그럼 다음은 어떤가?
민원업무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여 민원담당자를 보호하겠다
인허가업무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여 인허가담당자를 보호하겠다.
뭔가 살짝 이상하지 않은가?
소방관과 경찰관의 경우에는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지가 직업에서 꽤나 분명하다. 위험하고,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국가책임의 강화라는 부분도 무엇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더 좋은 환경, 좋은 장비, 충분한 예산, 사고 시 대책 및 보상 등등
그런데 민원업무와 인허가 업무에 대해 국가책임의 강화라는 게 무슨 소린지 아시겠는가? 원래 국가 책임이고, 국가의 업무이고 강화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지 않은가?
민원담당자나 인허가 담당자를 보호한다는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무엇으로부터? 일반 시민이나 기업들로부터 보호하나? 일반 시민이 무슨 괴물이야?
공교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하여..
교사를 보호하겠다
이것은 학생을 '적'으로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다. 보호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위험에 대한 보호'이고, 업무상의 위험은 업무상 주요 대상에게서 말미암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 일반 시민을
'적'으로 보는
교육부.
2. 디지털 문해력과 AI 기초역량 강화
이 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것이고, 경험해 본 바도 없어서 내가 여러분을 설득할 자신은 없다. 자신 있게 주장하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좀 이상하지.
말 자체는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것이 실현될까라는 걱정이다.
디지털 문해력이라는 것부터 보자.
현대에 꼭 필요한 것이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맞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다'
기본소프트웨서 활용부터 코딩까지 익혀야 하고
디지털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디지털을 통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이버윤리, 저작권 감수성을 익혀야 하고
왜곡된 정보 등 사안에 대한 대처법도 익혀야 한다.
근데 이걸 누가 가르치니. 현직 교사가?
풋.
아니면 외부강사를 불어서 한 두 번 강연을 듣게 하는 건가?
내 생각은 이렇다.
예전에 '창의성교육'이란 게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국영수만 파느라 개성도 없고 창의성도 떨어지니 창의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 창의성교육이 뭐였겠는가? 기존의 교사가 설명하는 방식을 벗어난 모든 수업이 '창의성'이라는 이름이 붙는 촌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창의성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
발현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을 뿐
디지털 문해력이라는 것도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 같다. 학생들이 이미 교사의 능력을 넘어선 상태가 아닐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AI기초역량이란 것도 좀 그런 게.
교육에는 단계가 있다. 초중등 의무교육에 굳이 AI를 집어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무슨 글을 읽고 맥락과 주제도 파악할 줄 알고 (그게 국어건 영어건 간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도 하고, 말 그대로 '기초'를 좀 해야 AI로 넘어가는 게 의미 있지 않나?
그러니까 토익 400점짜리랑 800점짜리는 하다 못해 '파파고'를 쓰는 것도 다른데 (토익 400점 정도면 파파고에서 틀린 번역을 해도 알 수 없다) AI라고 다를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일단 제일 궁금한 건,
최교진 교육부장관 당신은
디지털 문해력이
어느 정도신가 하는 거다.
뭐든 간에,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의 수준을 넘기 어려우므로.
3. 고교학점제 안착
와. 인성보소.
현장에서 이 사달이 나고 있으면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게 맞지.
중. 고등학생과 담당 교사, 학부모, 학원 강사 외에는 공감하기 힘든 내용일 텐데.
고교학점제는 망했어요.
어디부터? 고교학점제라는 개념부터.
교육부가 능력이 있어서 이 파고를 빠르게 헤쳐나가 정말로 고교학점제를 안착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고 바라마지 않는 것이긴 하다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고교학점제라는 개념자체가 내신 성적과 진학을 걸고 학생들에게 '도박'을 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데
뭔가를 선택해야 하고
선택에 따라 나중에
좋을지 나쁠지가 결정된다면
그게 도박이 아니고 뭔가.
선택과목을 정하기에 앞서 학교마다 설명회도 하는 모양이다만, 설명회 후에 학생들의 반응은
'잘 모르겠다'와
'어차피 고를 수 있는 것도 없다'
정도이다.
1학기에 실시한 수요조사서나 학교 교원들의 사정에 따라 과목이 폐강되어 선택지가 줄어들고, 신청 학생 수에 따라 내신의 유불리가 다르고, 무슨 과목인지 간략한 설명과 이름만 듣고 선택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를 안착시키고 싶으면 이렇게 해야 한다.
수강정정기간을 두어야 한다.
폐강되는 과목이 없어야 한다. 모든 학기에 모든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신청 수가 적으면 온라인 강의라도 열어야 한다.
모든 학기에 모든 과목을 마음대로 수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고등학교는 학교별 구분이 사라져야 한다. 시험은 공통출제. 온라인 강의의 경우는 교사를 선택 가능, 수행평가, 출석은 디지털로 받고, 매 학기 동일 과목의 시험마다 다르게 출제하되 난이도는 비슷하여 시험을 치른 시기에 따라 내신의 유불리가 거의 없어야 한다.
와... 이걸 할 수 있겠어?
현행의 고교학점제는
학교사정에 따라 학기 중 개설되는 과목이 한정적이어서 학점제로서 의미가 퇴색되었고
진로를 정하지도 않은 데다 정했다 하더라도 쉽게 바뀔 수 있는 나이의 학생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 자체가 문제인 데다
진학하는 대학마다 요구하는 내신 과목이 달라서, 자칫 선택을 잘못하면 진학의 기회가 일찍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냥 망한 정책이다.
살려보려는 마음은 이해하나, 감당은 어려울 것이다.
추천 하나 하자면,
국립사이버고등학교
를 설립하여, 현행 학점은행제와 연계하여 고교학력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반토막 나겠네.
4. 서울대 10개 만들기
어... 짧게 얘기하자면
서울대는 1개이기 때문에
서울대인 것이다.
서울대가 10개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이
대한민국 1등 대학이 되는 거다.
서울대는?
뭐긴 뭐야. 서울대지 ㅋ
다만 대한민국 1등이 아닌 거지.
한... 20등에서 29등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