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공무원 신분부터 내려놓고.
지난번에 이어 같은 기사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보자.
영국에서 교사에게 행정업무를 요구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였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주장인 것 같다.
진짜?
잉글랜드의 [2023년 학교 교사 임금 및 조건]을 가져와 봤다.
190 days (188 days for the school year beginning in 2022) must be days on which the teacher may be required to teach pupils and perform other duties; and
5 days must be days on which the teacher may only be required to perform other duties
190일(2022년 학년도 시작 시 188일)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기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5일은 교사가 기타 업무만 수행해야 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르치는 것 이외에
다른 업무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Planning, Preparation and Assessment (PPA) 시간이라는 것인데, 오마이뉴스의 기사에서는 '초등 1차시(40분)마다 1시간 이상의 수업준비시간'을 상정하고 논리를 폈던 것을 기억하실 게다.
영국에서는, 그러니까 기자가 따라 하고 싶은 잉글랜드에서는 수업준비와 학생평가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장해야 하느냐면
수업시간의 10%
크~! 과연 교육선진국답다! (교원의 능력은 영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고 조사되었다. 우리나라는 OECD기준으로 교원의 능력이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영국은 연간 190일을 수업하는 날이고, 수업시간의 10%를 수업준비와 평가시간으로 보장받으며, 수업하는 날의 나머지 시간과 수업이 없는 5일은 '다른 업무(other task)'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영국은 교사가 열심히 일한다고!'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의 주장이 사실이긴 하기 때문인데,
최근의 자료에는 교사에게 일상적으로 요구해선 안 되는 업무들이 명시돠었다.
교사에게 일상적으로 요구할 수 없는 업무 중에는 우리나라 일선 학교에선 흔히 하는 업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영국처럼
우리도 그런 업무를
전부 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그럴 리가.
상황이 다르고 사정이 다른데, 좋아 보인다고 무작정 따라 하면 피 보는 게 세상사다.
영국교사와 한국교사는 무엇이 다를까?
1. 영국에는 TA(Teaching Asistant)가 있다.
47만 명의 교사에 29만 명의 교사보조(TA)가 있다.
즉, 교사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행정업무는 누가 한다? 교사보조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없잖아.
교사보조가.
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업무를 안 하겠다고 하는 거야?
2. 영국교사는 상황이 다르다.
1인당 학생 수를 보자.
한국에 비해 1.5배~ 2배에 달한다. 수업시간도 약간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OECD 평균 이상이며,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평균 이하이다.
3. 심지어 공무원이 아니야.
잉글랜드는 교사 자격제(QTS, Qualified Teacher Status)를 통해 교사가 될 수 있다.
자격제이므로 교직에서 배제되거나 정지될 수 있는 사유가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일종의 계약직이므로, 지속적인 평가와 성과압박을 받기 때문에 이탈률이 높다는 점도 한국과 다르다.
4. 얘네들은 평가도 받더라.
수업 중에 골프 연습을 하고, 공 하나 던져주고, 만날 자습을 시키거나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어도 터치하기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교실이다.
영국의 교사 생활은 어떨까.
CPD라는 게 있다.
영국의 교사는 근무기간 내내 평가를 받고 성과를 측정하여 압박에 시달린다.
뭔진 모르겠지만
체계적이라는 느낌이다.
영국 교사에 대한 성과압박은 상당한데
이렇게 사정이 다른 외국의 사례 중 일부만 편취하고자 하는 것은 좀 염치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행정업무를 영국 수준으로 없애고 싶으면,
1인당 학생수를 1.5배 늘리고
보조교사에 해당하는 인력을 확충하며
성과를 측정하여 급여에 반영하고
평가를 통해 부적격자는 퇴출해라.
공무원 신분은 내려 놓고
나는 두 손들어 찬성이다.
덧.
글을 쓰면서 조사를 좀 더 해봤는데
영국교사의 행정업무 과다 주장은 그들의 성과관리와 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보고서가 제출되고 서류로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의 유지와 연봉계약에 직결되는 평가와 성과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행정업무 요구 금지 리스트'. 우리나라와 상당히 결이 다른데 국내의 교사들이 이같은 주장을 하다니 내가 민망할 지경이다.
교사에게 요구할 수 없는 행정업무 리스트가 명시되었지만 실질적 효력은 없을 것으로 영국 교사 노조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학생관련이나 책임이 큰 문서 작성을 대신하기에는 TA 자격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것. 노조들은 좀 더 실질적인 형태의 '성과압박의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행정업무 경감이라기 보다는)
여담으로, 영국의 교사노조는 평가의 필요성과 성과관리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방법과 형식을 문제 삼는 중. 개인적으로는 평가조차 거부하는 한국 교사들은 도대체 뭐지하는 생각.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