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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Jul 26. 2021

돌연사 다음날

남은 자식에게 내 그늘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기가 죽은 다음날부터는 긴 추석 연휴 주간의 시작이었다. 

토요일이었고, 당초 친정식구들과 추석 식사를 하기로 했었고, 약속 당시에는 물론 네 식구가 갈 줄로 알았으나, 하루 아침 사이에 아기를 잃고 우리 부부 둘만 그 차를 타고 갔다. 첫째는 이미 전날부터 친정엄마네서 지내고 있었다.


- 첫째한텐 뭐라고 얘기하지?


네살 딸애는 동생을 몹시 고대했고 누나 역할에 고취된 때였다. 임산부 시절부터 사람이 어떻게 생기고 나오고 자라는지 책까지 동원해서 자주 대화하던 우리였다. 기르던 강아지마냥 어디 시골보냈다고 둘러댈 수 없는 것이었다.


- 갑자기 너무 아파서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고 하자. 그리고 나중에, 죽는 게 뭔지 알면 그 때 설명하지.


사실은 네 살 언어에 맞춰 설명할 기력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뚜렷할지언정, 첫째가 동생의 기억을 잊기를 바랐다. 내 가슴에는 평생 불구덩이로 있을지언정 첫째는 죽은 동생 존재를 모르고 살았음 싶었다.


하루만에 첫째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 부담스러운 한편 고꾸라져 있던 나를 추스리게끔 했다.

그 때의 나는 피해자의 마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마음, 깊은 슬픔으로 팔이라도 자르고 싶었는데,

그러한 내 심경의 어떤 기색이라도 아이에게 끼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죄가 없으므로.


친정엄마 집에 와서, 부모를 의식해서 괜찮은 척, 참을만한 척 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열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평정심의 표정을 찾으려고 했던 거 같다. 노모가 혼자 애써 차린 명절 음식도 의식해서 양껏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 내외와 일상 대화도 하고 조카의 재롱에 웃기도 했던 거 같다. 그것이 친정엄마의 의도이자 사랑일테지.


그러나 내 심정 '안다'고 말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부모가 자식 잃은 자식이 눈물겨워 한 얘기였을 것이다.

상실감이 어떤 건지 안다고, 나도 고통스러웠다고, 그게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지 간에 얼마나 더디게 누그러지는지에 대해, 아빠가 조곤조곤 얘기를 하려고 하고 엄마가 그 고통을 묘사하려고 들어 나는 앙칼지게 소리쳤다. 


- 달라. 안다고 말하지마. 자식 죽은 거랑 부모 형제 죽은 거랑은 달라. 부모는 원래 자식보다 먼저 가는거고. 


내 부모 떠나도 이보다는 덜 아플거라 내 장담한다고 조소마저 올라온걸 뱉진 않았다.


지금 그 장면을 떠올리니 무안했을 내 남편과 부모님, 동생 내외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머쓱해하는 가운데, 남은 여생 그럼 나는 내가 불행한 인생이다 자처하고 그 자기연민을 당신들이 미친 나를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로 들이대며, 쉬이 서러워하는 그런 인생으로 빠지려나. 아직 미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의견을 갖고 싶지 않아 생각을 관뒀다.


핸드폰 사진첩을 보니 그 날 친정집에서 내 딸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다녔다. 말못하는 세살 이종사촌과 얼굴이 부어터진 엄마, 꺼칠한 아빠, 밥공기를 들고 손녀 한숟갈 더먹이려는 외할머니, 어쩔 수 없이 덩달아 수척한 외할아버지, 집안 살림살이 이모저모. 


과일상까지 정리하고 엄마는 또 혼자 부엌에서 분주하고, 친정아빠는 내가 쏘아붙인 소리에 아연해서 거실에 멍하니 있을 적에 드디어 나는 딸애와 마주앉았다. 이틀만인데 너무 큰 걸 잃어 믿기지 않은 심정으로.

딸은, 내가 앞에 앉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내게 물었다.


- 하온이 벌써 죽었어?


 그 명료한 물음에 저기 다리 꼬고 앉아있던 아빠 상체가 크게 들썩였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벌써'라는 조사와 '죽었어'라는 과거형 시제 사용의 정확함 때문에 나는 놀랐다. 아이가 죽음을 다 알진 못한다 할지라도 겉핥기나마 죽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놀랐다.

그리고 그 날 내내 나와 둘이 대화할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바로 멱살잡듯 물어본 것에 마음이 아렸다. 너도 계속 의아해하며 엄마를 기다렸구나.


- 아니. 병원에 갔어. 몸이 많이 아프게 되서. 병이 나으면 올거야. 


나는 여전히, 네 살 첫째가 잠시 본 동생의 기억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할 리 없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단정짓는 마음으로 그렇게 응대했다. 제 까짓게 자기 노는 데 정신 팔리고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겠지.


- 할머니는? 집에 있어?


산후도우미를 말하는 것이었다.


- 아니. 할머니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셨어. 하온이도 없으니깐. 이제 안오실거야.


아이는 갑자기 온몸으로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 보고 싶다고. 보러가야한다고. 오라고 하라고. 건수를 잡은 듯 발광했다.


나는 그래, 그래 아이를 다독였다. 내 슬픔이 너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너가 눈치채지 않도록 엄마가 엄마를 다잡을게. 엄마가 미안해. 동생을 잃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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