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야겠니, 부검을?
아기가 사망한 지 4일차 되는 월요일에 부검이 예정되어 있었다.
독감 접종 이후 돌연사가 왕왕 있을 때였고, 추석이 목전이었으나, 그럼에도 다행히 월요일 부검 스케쥴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형사가 설명했다.
내게 다행이랄 게 남아있나.
금요일 새벽에, 아기가 CPR 중이지만 보내줘야할 거 같다고,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기 직전에 내 마음에는 걸치적거리는 게 있었다. 부모님은 손자를 잃었음에 슬퍼하고, 자식 잃은 자식을 애달파하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난감해할 것이나 그 다음으로는 주님이 왜 내게 이 시련을 계획하셨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리마인드할 것이었다. 이 주의 계획하심 논리에 있어, 당초 원인 소지는 물론 나에게 있는 것이다.
토요일 친정 식사에서 나는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주일 예배를 지키지 않은 것을 비롯하여 니멋대로 사니, 거둬가신 것이라고. 내깜냥이 형편없으니 그나마 첫째가 아닌 정이 덜 든 둘째를 데려가신 거라고. 사실은, 내가 양육된 환경의 관성으로 인해, 나는 오십퍼 이상은 '주의 계획하심'에 두려움으로 동의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위치 내리듯, 앞뒤 설명할 수 없게 이렇게 숨이 꺼져버릴 수 있나.
나는 엄마 아빠의 공고한 사고체계에 내 의견을 올릴 의사도 없었다.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흐를 줄 알고 있었고, 이렇게 빨리 입밖으로 표현될 줄은 몰랐으나, 어쨌든 그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절절히, 속이 타는듯한 시급함으로 내 영혼이 안타까운 것이고, 내가 내 자식을 볼 때 그러하듯 동일한 내리사랑 카테고리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부모에게 각을 세울 것도, 서러워할 것도 없었다.
이 돌연사가 그들에게는, 주가 주관하시는, 사람이 도저히 막을 수 없던 (사실상 죽고 사는 게 다 그렇다), 순리이기 때문에,
남겨진 나의 사명이란 이 사건을 해석하고 남은 여생 주의 그늘 하에.. 그러니 슬퍼할 것도 없고 연민에 빠질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상에서, 신의 입장에서, 오장육부를 헤쳐 사인을 알아보겠다는 인간의 노력은 얼마나 가당찮은가, 순리를 거스르고 감히?
사실 아빠는 두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위는 모두 내 귀에 저리 풀어헤쳐져 들렸단 것이다.
- 너무 슬퍼하지 마. 근데 부검을 꼭 해야겠니?
나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부검을 꼭 해야만 했다.
아기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지로 내몰았다는 이 죄책감에 인과관계를 부여해줘야 했다.
입원을 했으면 죽지 않았을텐데, 아주대 응급실로 갔다면 죽지않았을텐데, 119를 타고 갔으면 대원들이 초기 진단을 하고 사전 조치를 해서 죽지 않았을텐데, 내가 저녁나절 이상징후를 제대로 알아봤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B형 간염 접종을 그 날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아니, 예방접종을 오전에만 했어도 이상징후를 알아채고 119 타고 아주대 응급실로 가서 입원을 하고 죽지 않았을텐데, 내가 그날따라 오전에 그리 길게 외출을 하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텐데, 입주 산후도우미를 집에 들이지 않고 내가 밤마다 끼고 있었으면 이상징후가 이상징후인줄 알아보았을테니 죽지 않았을텐데, 내가 삼개월만에 회사 복귀할 생각만 없었어도 입주 산후도우미를 집에 들이지 않았을텐데, 내가 진급만 제때 했으면 삼개월만에 회사 복귀하겠단 생각도 입주도우미 생각도 없었을텐데, 아니 진급 따위가 인생에 뭐가 중요한가, 나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내 아기. 내 아기.
써놓고 보니 결국 나를 회복시키기 위해 부검을 한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자식 잃은 부모가 자식이 어떻게 왜 죽었는가에 대한 진실에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그 죽음에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인 거 같다.
귀책자를 찾고 엄벌에 처하는데 여생을 걸기도 하지만, 그 귀책자에 대한 미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의 크기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검 전날 일요일에는 첫째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오래도록 놀았다.
둘째가 첫째였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모자란 나에 대한 책망이 그런 가정법으로 돌아왔다.
부검에 참관하는 것은 담당형사 뿐이었다.
변사자 부모인 우리는, 병원 영안실로부터 국과수로 이동하는 차량에 실릴 시체가 해당 시체가 맞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아침 여섯시에 성빈센트 영안실에 서서 차량을 기다렸다. 이런 경험 하지 않을 인생들이 더 많을지인데.
차량 운전수와 인사를 했고 영안실 냉동고를 열고 사체를 침대째 꺼내고 면포를 거두고 변사체를 일별하고 차량에 실리는 것을 확인했다. 파란빛이 도는 아이의 형체의 온도를 손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다른 손으로 붙잡아 막았다.
그리고 집에 왔다. 마음이 힘들어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놀렸다.
오후에 국과수에서 사체와 돌아온 경찰을, 남편이 만나고 왔다.
아기가 장염이 있었는데 모르셨냐고. 몰랐다고.
장염이 있으면 열이 있었을텐데? 접종 전 소아과에선 정상체온, 밤에 응급실에선 되려 저체온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공식 부검감정서를 받아봐야 아는 것이었지만, 경찰 말의 인용을 듣고
이후 나의 죄책감은, 입주 산후도우미 사람 잘못 들여 결국 애가 죽어나갔다에 꽂혀 그 이후로 매시간 나를 죄어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