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코크 스크루 cork screw는 프랑스어로 '띠어부숑tire_bouchon'이라고 하지. tire는 잡아 뺀다는 말이고 bouchon은 마개란 뜻이야. 이건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마스터 소믈리에가 된 기념으로 한정 제작하여 지인들에게 돌린 것인데 너에게 줄게."
20여 년 전 어느 날 제네바의 에티엥 집에서 나는 이렇게 띠어 부숑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에티엥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띠어 부숑' - '띠흐 부숑'이라 해야 할지.. 아직도 정확한 발음이 어렵다.-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다음 날이 공교롭게도 앤티크 장날이었다. 공교工巧롭다는 단어를 쓴 것은 뜻 그대로 '생각지 아니한 사건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 특이할 만하다.'는 뜻이다.
아침에 일찍 에티엥의 집을 나와 제네바 시내를 돌아보던 중에 맞닥뜨린 앤티크 마켓은 나를 한참을 흥분시키기도 남았다. 그 넓은 거리와 광장이 온갖 종류의 앤틱 물품들로 넘쳐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일 년에 딱 두 번 열리는 대규모 벼룩시장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앤틱 물건 중에서도 전 날 선물 받았던 띠에 부숑(영어로는 코크 스크루)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에티엥으로부터 받은 코크스 크루는 현대식 제품으로 '웨이터스 프렌드'라는 별명을 가진 것이다. 앤티크 마켓에는 그러한 신식 제품은 없고 오래된 것들만 진열되어 있었으나 다른 종류의 엔틱 물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가지가지 자태를 하고 있던 코크 스크루만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여행을 할 때면 꼭 들르는 곳이 앤티크 마케팅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띠 어부 숑 수집가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크 스크루 수집가들의 모임이 여럿 있다. 그들끼리 매년 만나서 코크 스크루를 서로 사고팔고 정보도 교환하며 수집품을 자랑하는 장이 서기도 한다. 최근에는 팬데믹으로 대회가 열리지 못했어도 전에는 모임마다 매년 어디선가는 축제가 열렸다. 이러한 대회에서도 클럽의 명단에서도 여성 회원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속해 있는 클럽은 CACLC인데 입회를 하려면 자격을 심사받아야 하고 신청자의 소장품 중에 '베스트 6'을 제시하여야 한다. 추천을 받고 활동을 입증해야 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운 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입회를 할 때 본의 아니게 특혜를 받았다. 내 영문 이름이 Simone이라 집행부에서 여성인 줄 알고 덥석 받아 준 것이다. 시몬은 여성용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영어 프랑스어 권에서는 Simone은 여성 이름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남자 이름이다.)
나라별로 봐도 코크 스크루 수집가는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유럽과 북미 지역에 편중되어있다. 와인 문화 또는 와인 산지와 당연히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태국, 일본에 몇 명씩이 있고 한국에는 거의 찾아볼 수없다. 주류 박물관 형태로 와인이나 다른 술의 액세서리를 진열하면서 코크 스크루를 부차적으로 모은 분은 계셔도 코크 스크루 자체만 수집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방면으로 한국인 수집가를 찾아봤지만 아무도 만나 보지 못했다.
ps. 얼마 전 에티엥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이제 나의 그 소믈리에 친구는 스위스에서 성공적인 와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Grand Jury Européen'의 멤버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