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수집의 시작은 우연이다. 20여 년 전 제네바의 에띠엥 집 거실에서 선물 받은 코크 스크루 1개, 그리고 그다음 날 벼룩시장에서 처음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앤티크 코크 스크루 Antique Corkscrew, 이 두 사건이 나의 수집의 시작점이었다는 점은 전 글에서 밝혔다. 이후 현재까지도 그 다양한 모습, 오묘한 자태의 코크 스크루 매력에 흠뻑 빠져 들어왔다. 하지만 제네바에서의 우연한 두 사건 중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수집이라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집의 시작은 필연이다. 60여 년 전 나는 대전 우리 집 앞마당의 코르크 Cork 더미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선친께서 코르크와 양철 병마개(왕관, crown) 공장을 운영하시어서 집 앞, 뒷마당에는 어린 나에게는 그야말로 산처럼 코르크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산에서 채취해온 굴피(참나무 껍질)를 가공해서 각종 병의 마개로 만들어 팔기까지의 전 공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도 이미 밝혔다. 하지만 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주어진 상황이었기에 나중에 수집이라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빠져 들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보다.
수집의 시작이 우연이던지 필연이던지 간에 코르크 스크루는 코르크 마개를 따기 위해 만들었지 코르크 스크루를 위해 코르크 마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코크 스크루를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즈음에는 이미 영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고대에도 와인은 있었으나 보관과 운송에 동물의 가죽이나 나무통을 사용하였고 유리로 된 병과의 만남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 해도 17세기 말까지는 제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관계로 유리병은 귀하고 비쌌다. 게다가 깨지기가 쉬워 버들가지나 지푸라기로 싸서 취약한 단점을 보호해야만 했다. 나무나 코르크에 올이 굵은 리넨을 덧씌워 마개로 사용했으나 완전히 밀봉이 되지 않아 밀랍으로 그 틈을 메워 와인이 새는 것을 방지했다. 옛날 병은 지금과 달리 양파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긴 형태인데 마개가 병 입구에서 튀어져 나와 있어 손으로 잡아 빼거나 간단한 도구로도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점차로 병 제조기술도 발달하고 뉘어서 편하게 와인을 보관하거나 운송에 편리하게끔 병 모양을 개선하면서 코르크 마개도 더 긴밀해져야 했다. 따라서 빡빡한 마개를 제거하는 도구로서 코크 스크루가 자연스레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코르크 스크루는 포도나무 덩굴손의 꼬불꼬불한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고도 하고 포도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송이의 형상을 따서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원설들을 뒤집는 말이 될지 모르지만 더 면밀히 조사해 보면 코르크 스크루는 총기와 관계되는 기구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의 총은 구조상 총알을 발사한 후 탄피를 일일이 꺼내야 했고 자주 총신을 닦아 주어야 했는데 이때 사용한 기구가 지금의 코크 스크루와 유사한 형태이다.
또 하나의 비슷한 모양을 가진 것은 목수들이 나무에 동그란 구멍을 뚫거나 파 낼 때 사용하는 기구이다. 우리 말로는 이 도구를 '타래송곳'이라 한다. 그래서 코크 스크루의 순우리말도 국어사전에 타래송곳으로 등재되어 있다. 코크 스크루와 비교할 때 모양과 기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제일 먼저 작가 최남선이 '금강 예찬'에서 사용하였으므로 이를 동의어로 본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타래-송곳[발음 : 타래 송 곧] : [명사]
1. 나무에 둥근 구멍을 뚫는 데 쓰는 송곳. 줏대가 용수철처럼 꼬여 있고 그 끝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붙어 있다.
2. 코르크 마개를 따는 데 쓰는 용수철 모양의 송곳. 크기가 작고 줏대의 끝은 날이 없고 뾰족하다.
[예문] 종업원은 주문한 샴페인을 타래송곳으로 조용히 땄다. 병을 개봉하실 때에 그 마개 뽑을 타래송곳으로 만들어 두신 것이…. (출처 : 최남선, 금강 예찬)
최남선은 신문명을 일찌감치 접한 분이라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글에서 코크 스크루(타래송곳)를 언급하기는 하였지만 이에는 좀 오류가 있다. 샴페인도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일반 와인처럼 코크 스크루를 이용하여 따지는 않기 때문이다. 샴페인은 병 내부의 압력을 이용하여 손으로 마개를 돌리면서 서서히 빼낸다.
p.s.. 코크스 크루는 영어 단어이다. 프랑스어로는 띠흐 부숑 tire-bouchon, 이탈리아어로는 까바따삐cavatappi라고하며 각 나라마다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 코크 스크루 전문 사이트에는 이 것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아직 한국어 '타래송곳'은 올라가 있지 않다. 내가 등재를 몇 번 시도를 해봤는데 한국에는 수집가가 많지 않아 그런지 여의치 못했다. 조만간 다시 한번 접촉을 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