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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Apr 06. 2022

코크 스크루 수집 III- 강박

술 이야기

만약 여러분이 나처럼 코크 스크루 수집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꼈고 이에 대해 한마디라도 조언을 듣고 싶다면 일단 '조심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당신은 중독자가 될게 뻔하니까. 

코크 스크루

지구 상에는 수천, 수만 가지도 넘는 코크 스크루가 있어서 여러분이 남은 생애에 그것들을 다 모으기는커녕 만나 보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이니 공연히 시원찮은 코크 스크루를 모아 썩혀두지 말고 그것을 이용해서 와인병이나 따서 마시는 쪽을 권하는 바이다. 이렇게까지 말렸는데도 굳이 가시밭길을 걷겠다면 더 이상 만류하지는 않겠다. 이제부터 이 척박한 대한민국 코크 스크루 수집 환경 아래서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하기 바란다.



나는 단언컨대 수집가는 모조리 남성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릇, 인형 등 실내 소품이나 장식품을 모으는 수집가라 할 여성들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수집가는 전부가 남성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에만 매달려 나가는 일념, 강렬한 승부욕, 치열한 경쟁심은 메마른 감정을 지닌 남성의 전유물이다. 세상과의 단절, 무리를 떠나 소외되는 상황을 견뎌낼 강인한 정신력은 남자들에게 있다. 저울 눈금의 정밀성이나 시계 초침의 정확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일생을 바치려면 마음 가짐 뿐만 아니라 내재된 본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집념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치열하게 정리하고 분류하여 수집 물품에 계통과 질서를 부여하며 체계를 만들어 낸다. 웬만한 걱정거리는 무시하고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며 끝까지 매달리는 정신 자세는 수집을 표현하는 감정 상태와 일치한다. 동굴 속에 틀어 박혀 은둔자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남자들은 혼자 있기 위한 핑계로 시작한 취미 활동에 몰두할 때에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복잡 다단한 사회 관계망을 피하면서 질서 있는 일정한 유형의 세계 안에 틀어 박히는 자폐 증상과 언뜻 유사하다. 물론 그렇다고 수집이 자폐 경향이 있다거나 남성 전유물이라거나 수집가가 사회활동을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둘 사이에는 일련의 공통점이 있고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참여하는 다른 활동에서도 역시 보이기 때문이다. 바다나 강에서 우리가 여성 낚시꾼을 그리고 들과 산에서 여성 사냥꾼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는 가를 살펴보면 문제는 자명해진다. 

시계공의 집중


수집가들 중에는 유별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극단은 토마스 필립일 것이다. 인쇄된 책과 손으로 쓴 필사본의 수집에 전념할 여건을 일찌감치 갖춘 그는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이었다. 토마스는 런던 등지의 서적상들과 관계를 맺고 챌튼햄의 영지에 방대한 양의 책과 필사본을 사들였다. '책이 우선이고 사람은 다음'이라는 신념으로 매주 평균 40권씩을 사들인 그의 저택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어 가족들이나 손님들이 머무를 공간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서재 전체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지만 이사하는 도중에도 변함없이 책은 사들였다 한다.   

"전 세계의 모든 책을 한 부씩 소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공언했던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소장서를 국가에 헌납하고 자신의 이름과 보물이 영구히 보존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고집한 탓으로 정부와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 많은 수집품을 남겨 놓은 채 마침내 1872년 80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아직도 끌러보지 않은 책들이 상자채 넘쳐 있다고 전해진다.

필립스가 이렇게 광적으로 장서 수집에 매달린 이유는 그의 말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강박증 때문이다.

"이 일은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들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귀중한 문헌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글을 여러 곳에서 접하면서 이런 충동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방에 가득 찬 책들

그리스 전설의 탄탈로스왕은 신들을 시험하다가 형벌을 받았다. 턱 앞에 고여있는 연못 물을 마시려 들면 말라버려 끝내 마시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다. 

그 반대의 저주는 수집가들의 몫이다. 그들은 갈먕하던 수집품을 손에 잡는 순간 그것이 자기가 갈구 하던것의 상징일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차린다. 수집가들은 갈망이 의미하는 황홀감 자체에 속아 그 안에 천국의 열쇠라도 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배고픈 허기를 채워줄 그 물건을 잡는 순간 마법이 풀려 다시 허탈해 지는 것이다. 

비단 수집가 뿐이랴. 사람들은 허공에 뜬 열정을 물질로 충족시킬수 있으리라 믿으며, 성취의 그 순간이 자신에게 만족을 주리라 믿으며 무작정 그 뒤를 쫓는다. 물건으로 둔갑해 있던 우리의 욕망은 손에 움켜 지었던 것이 산산이 부스러지는 그 순간에도 우리 눈 앞에서 미친듯이 춤춘다. 


그러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세상이치가 다 그렇다지만- 하나를 따라잡았다고 생각되면 그 손에 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다음 것이 생각나는 것이 코크 스크루 수집이기도 하다. 어렵게 내것으로 만든 후에는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새롭고 희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코크 스크루로 우리 마음이 달려 간다. 욕망의 허상에 취해 또 다시 광란의 칼춤을 추는 무대로 수집가들은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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