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참고 참으니 우울이 되더라

감정을, 화를 숨기면 좋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by 이시몬

"사람이 어떻게 화를 안 내고 살아요?'

내 발로 스스로 정신과에 찾아 간날

선생님이 내게 반문한 말이다.


나 스스로 '정신병원'에 찾아간 날.

멀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Covid-19로 모두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요상한 라이프 스타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햇살이 너무나 밝았던 봄날 아침이었고,

따뜻함을 넘어 살짝 더웠던 느낌이었다.

조용히 하루가 지나갔으면

그냥 멋진 봄날의 금요일이 있을터.



나름 규모와 예산도 빠방 하고,

무엇보다 내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회사사정은 그래도 어려웠고, 자체적인 구조조정도 있었다.

그 말인즉슨, 상당히 많은 업무를 혼자 소화해야 했으며,

새로운 감독님과 첫 합을 맞추는 시간이기도 했다.


몇 달 내내 개고생 해서 준비한 캠페인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첫 콘텐츠가 온에어 되는 날이었다.

고객사의 관심과 독촉에,

며칠째 계속되는 작업에,

감독님과 나를 포함한 우리 팀의 신경은 날이 서 있었었고,

그렇게 금요일 오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사히 콘텐츠는 완성되었고,

만족스러운 고객사의 피드백과 수고했다는 인사가 있었고.

그렇게 한숨 돌리겠거니 하던 차,

그동안 아무 말도 없었던 에이전씨에서 전화가 왔다

"아니 이거를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해요!"

상당히 순화해서 써놨지만,

업무상 통화의 선을 넘나드는 거친 언사였다.

"무슨 일을 이렇게 하세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필름은 끊겼다.


사실 꼭지가 돌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그 순간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데,

나는 전화상으로 정말 험한 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옆에서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느낀 감독님은

내 전화를 건네받고, 아니 빼앗고

좀 진정하고 전화를 하는 게 좋겠다라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날 상황은 새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감독님은 정확히 답을 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그 소리 들었으면 너 한대 쳤다 야. 근데 기억 진짜 안나?"

이게 말로 듣던 블랙아웃 뭐 그런 건가.

느낌은 어떤지 기억이 나는데, 상황은 흐릿하다.



사실 프로젝트 시작하면서부터 맘에 안 들긴 했었다.

내 선택도 아니었으며, 적은 예산에 많은 부탁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

나는 죄송합니다. 이거 하나만 부탁드려요. 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던 철저한 '을'의 관계였고,

그들은 당연한 것 마냥 날이 선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뱉어냈다.

뭐 어쩌겠는가. 일은 끝내야지.

좋은 게 좋은 거다 술술 넘어가야 한다 늘 그랬듯.


그 팽팽한 선이 끊어진 후...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전화를 했다.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전화한 건 다 잊으시고, 우리 프로니, 일 마무리하시죠"

마치 요즘의 인공지능처럼 조금 전의 분노는 어디다 숨겨놨는지 감추고,

다시 일 야기를 꺼낸 나. 지금 생각해 봐도 소름 돋는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독설을 들었던 담당자도

"제가 좀 무례했네요. 저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고,

업무적인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내 감정의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언제 화를 저렇게 내봤는지 기억도 안 날뿐더러,

내가 처음 보는 나의 모습에 나는 너무 당황했고.

동료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네이버지도에서 근처 정신병원을 검색했고,

당일 예약이 안된다 하였음에도,

급하다고 우겨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가본 정신병원의 느낌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차분한 분위기, 색깔에, 적당한 온도

귀를 거스르지 않은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들었던
어디서 맡아본 아로마 향도 진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걸 공황장애라고 하지요. 잘 오셨어요"

엄청난 진단을 정말 별거 아닌 말투와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내리셨다.



내가 나를 이상하게 느낀 그날의 기억은 바로

남에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화날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을 터이고,

늘 그랬듯 내가 참거나, 내가 넘기면 모두가 편안하고

일도 잘 정리되었을 테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아니 꼭꼭 눌러 담아두었던 게 맞다.


사람 좋은 사람.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편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걸 아쉬워하지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네가 화라도 냈으면 좋겠어"

나를 오래 본, 그리고 가장 잘 알았던 옛 연인과 다퉜을 때,

늘 그렇듯 나는 대화를 회피했고, 뭉갰다.

그 친구는 자기감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감정 고수였으리라.


몇 년 전 결혼을 앞둔 친구가 '부부학교'를 간단다.

거기는 도대체 뭐를 배우는 거냐. 재테크? 육아?

"부부사이의 대화를 배운다. 그래서 너가 결혼을 못하는 거여"


진짜 단 1퍼센트도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수업이 효과가 있었는지,

많이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오래 묵히지는 않더라.

둘 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커플이기도 하고.



나는 어벤저스에서 '헐크'가 참 멋지고 좋다.

녹색 피부의 큰 덩치와 강력한 힘 때문이 아니고

정말 대놓고 감정에 솔직해서 헐크가 좋다.


지금 당장 불쾌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생겨도,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낼 자신이 없다. 아니 못한다.

그래도 살짝은 아주 살짝은 말해보려 시도는 하고 있다.

좋아요. 싫어요. 안 돼요.


근데, 상대방도 이해하고 납득하더라.

맘이 살짝은 편해졌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을'일 텐데'

오랜 시간 같이 일했던 직장동료의 말이다. 그래도 말조심은 해야 한다.



*두서없이 적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울증은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 처방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질병이라 합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며,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또는 주변 분들을 진단하거나 단정 짓는 행위로 '치료'가 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들은 노래는 'The Beatles - Here Comes The Sun' 입니다. 날씨가 너무 좋네요.

작가의 이전글[ep.13] 우울한데, 노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