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굳이 안 해도 될 고민들

삶의 재미는 '움직임 속에서만' 다시 시작된다.

by 이시몬

탕수육 부먹찍먹 논쟁에 개그맨 문세윤 님이

"그런 거 고민할 시간에 한 개라도 더 먹어라"

라 정리했다 한다.

부먹찍먹 굉장한 중요한 문제 이긴 한데,

하나를 못 포기할 문제는 아니다.


예전에 책 한 권을 사러 서점에 간 적 있었다.

사고 싶은 책을 정하고 간 게 아니고

가서 고를 참이었는데,

서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었다 놨다 고민했다.

그냥 아무거나 편히 읽을 가벼운 내용의 책을 찾았는데,

뭔 자격증 수험서까지 찾아봤던 기억이다.

어찌하다 의심의 흐름이 거기까지 갔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안식을 찾으러 간 서점에서 한참을 헤맸다.

그날의 결론은 '나중에 서점 하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되겠지'로 정리.



앞에 쓴 글을 읽다가 생각과 고민이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어의 뜻으로 보면 생각은 판단을 위한 과정이고,

고민은 생각과는 관계없는 마음속이 괴로운 상황이라 정의하는데,

분리해서 생각하고 싶지만, 내게 생각은 고민이다.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생각이 문제.


나는 상당히 상당히 부정적이다.

어떤 상황을 예측할 때,

경우의 수 중 최악을 제일 먼저 찾아본다.

참으로 재수 없게도 아이디어 회의에서는

"OOO 할 가능성이 있지 않아?"라고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나 스스로 나는 현실적이며,

사리판단을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고,

실패를 겁내니 성공을 위한 최적의 루트만을 보고 싶었다.


사실 이런 내 부정적(현실적)인 검토는

업무/경영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말한다.

좋게 말하면 크로스체크가 될 수 있고, 리스크 체크도 될 수 있고,

발상의 전환이 될 수도 있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의 명운이 달린 신사업에 대한 검토가 있을 때,

대표(친함)와 치열한 논의가 몇 날 며칠이 이어졌다.

"그래서 OO은 어떻게 해결할 건데?"

"시장조사가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저 근거는 어디서 나온 거야"


좀 기분이 나쁘더래도

이런 회의는 논리와 근거를 통해 단단해진다는 공통된 믿음이 있었기에,

좀 더 빠른 이해와 심각성, 또는 긍정의 표현을 위해

정말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들이 오고 갔고,

결국 감정의 소모까지 오고 갔다


그래 네 말이 다 맞고, 나는 반박할 논리가 없어. 근데 스티븐 잡스가 차고에서 컴퓨터 내다 팔 때 그런 생각을 하고 했을까? 그냥 확신이 들어서 하지 않았을까?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현실적으로 보는 것도 다 훌륭한 인사이트지만 세상을 바꾼 혁신은 그래도 로망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나는 거기에 반박할 논리는 없었다.

나도 크리에이티브를 짜다가도

시장논리, 광고주의 요청은 잠시 뒤로 넘기고

"아 이거 하면 재미있겠다"라 생각한 적이 많으니.



부정적인 생각은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실패한 것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하던가.

고민과 걱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력함.

그리고 이 고민은 '그게 꼭 해야 하는 걸까?"라는

일상을 꼭 필요로만 움직여야 하는 수동적인 삶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말인즉슨, 삶이 재미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실패는 없더라도 재미가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더라.

생각(고민)의 답이 다 때려치워라니

극강의 효율인 걸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결국 하고 있는 건 부정적인 생각 '고민'

점점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고민을 하지 말고 '명상'을 해보라고 추천한 지인도 있었는데,

한번 알아봐야겠다.



이제는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빠져나가기 위한 출구전략인지는 몰라도

내가 내린 '고민'의 정의는 '쓸데없는 것'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생각은 정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지만,

'고민'은 내 기준에 아주 비효율적인 것으로.

"그럴 시간에 하나 더 주워 먹는 게 이득"


꼭 결과를 마음에 두지 않고 움직이니,

재미있는 일이 다시 생기더라.

오랜만에 저장되어 있던 카톡 인맥에게 말도 걸어보고

광고주에게 엉뚱한 아이디어를 그냥 던져보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살아있음을 다시 불러내보려 한다.


*대표와 몇 달의 티키타카가 오고 갔던 그 신사업은 결국 '해보고 싶다'라는 비논리적인 이유로 진행되었고, 3년 동안 내 시간과 에너지를 옴팡 잡아먹었으며, 결과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실패해도 생각보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더라.



*두서없이 적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울증은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 처방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질병이라 합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며,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또는 주변 분들을 진단하거나 단정 짓는 행위로 '치료'가 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적-다행이다'를 시작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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