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지우는 게 아니라, 결국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어제 쓴 글이 쓸데없는 고민을
진짜 쓸데없는 '짓'이라 마음먹었고,
조금은 그렇게 쓸데없는 고민을 덜 해보고자 시도하는 중인데.
고민 보다 내 맘을 수렁텅이로 담그는 요소는
과거의 기억이다.
타임머신이라는 소재가 나오는 걸 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열망은
나뿐만 아닌 보편적인 요소 같은데.
내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나는 역사를 바꿔보거나,
비트코인을 사서 떼부자가 될 생각보다.
과거의 내가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서,
아니면 결정적인 상황 앞에 마주한 내게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과거의 기억과 회상은 후회로 연결된다.
겉으로 나는 똑똑한 척하지만 실상은
깨달음이 매우 늦는 '이해가 느린' 사람이었더라.
어른들이, 아니 조상들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나이가 먹어 이해가 되더라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
현실에 대한 인식이 늦은 게 맞는 것 같더라.
나중에 다하면 되지라는 게으름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이건 필요 없어라고 건방지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어린 시절에서 왔을 수도 있고
먹고사는데 이게 왜 필요해!
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물리의 내용이
나이 먹고 나니 어렴풋이 기억나며 다시 찾아보거나,
영어시간에 그냥 단어만 잘 알면 되지 하며 외면했던
영문법을 다시 공부한다던가.
이건 공부하는 재미라도 있지.
현실에 대한 늦은 자각도 매우 느린 편이다.
어릴 때 남들은 취업공부다 뭐다 할 때,
차피 현장 나가서 구르면 몇 년 안에 뭐 되지 않겠어.
청약저축은 뭐더라.
부동산 공부를 해보니 뭐가 좋더라.
재테크는 뭐 어떻게 해야 하더라
월세보다는 전세가 낫더라.
재테크는커녕 돈이 없었던 시절이거니와
하루하루 해야 될 일 투성이에 귓등으로 흘렸던 일들이
그저 어른의 이야기로 여겨졌던 야기들이
알고 보니 남들은 다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나만 뒤 쳐 저 있더라.
그래도 이건 괜찮았다.
나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재산과 사회적 척도보다 그래도 더 중요한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그래도 믿고 싶었기에.
사실, 나이가 먹고 나니.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사는 지금이라 이런 푸념을 하는 것일 수도.
요즘 들어 부쩍 과거를 후회하는 이유는
그 후회되는 과거를 계속 불러오는 이유가
우울하고 불안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내가 불안하고 우울해서
후회되는 기억을 소환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What if
만약 거기서 내가 한 번만 더 잘못했다고 빌었더라면,
그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갔었더라면,
가만있지 말고 말이라도 한번 해볼걸.
정말 찌질하게도 그때는 자신 없었던 행동과 말들이
상상 속의 내가 말하고,
내가 원하는 결말로 나아가는 상상이 계속되면
그 잠깐은 마음이 편해지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비참함은 정말 어둠 그 자체다.
우울증 환자의 공통된 증상이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란다.
나는 무언가 의미가 깃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그동안 떠났던 여행지의 비행기 표와 지난 여권들
우리 집 고양이가 아기 었을 때 가지고 놀았던
지금은 시큰둥한 장난감부터
헤어진 연인의 흔적이 이사를 몇 번을 했음에도
아직도 집에서 묻어 나오고 있으니...
사실 이런 성격은 부모님도 비슷한 것 같다.
아버지의 첫차를 폐차시키던 날
더 좋은 차를 샀음에도
"사고 한번 없이 그래도 전국 구석구석 돌아다니게 해 준 고마운 차였지"
하루 종일 우리 집은 침울했었다.
집에서 정말 옛날 물건이 나오면
"그건 차마 못 버리겠더라" 하고 웃는 우리 엄마.
나랑 똑같네.
누구는 그런 것들을 싹 치워 버리라고 하는데.
힘을 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아픈 기억이지만 내가 그래도 살아온 증언 같아서
내게 과거의 기억을 계속 회상하는 이유를 오늘 묻다 보니
빙돌려서 야기하지만 딱 잘라 말하면,
후회되고 미련이 남아서다. 근데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단지
그렇게 아픈 과거를 계속 불러오면
상처에 딱지가 앉고, 흉터만 살짝 남듯이
익숙해지고 무덤덤 해지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