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쯤 되었을까? 손글씨 쓰기가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소설, 시의 한 구절을 적어 보기도 하고, 맘에 드는 유행가 가사를 베껴 써 보기도 한다. 필사를 하다 보니 그냥 읽고 말았던 때 보다 훨씬 더 내 마음속에 꾹꾹 눌러 새겨지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끄적거려 보았던 박경리의 소설, 정밀아의 노래, 함민복의 시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감동이 생생한 것은 아마도 써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작가들의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이내 알게 되니 좌절하게 된다. 그래도 필사를 해 보면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적잖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출근해서 아침에 20분 정도 손글씨를 쓴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무척 차분해진다. 요즘같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 내가 단 10분이라도 이렇게 차분해진 때가 있었나 싶다. 또한 자꾸 쓰다 보니 살면서의 교훈 같은 걸 손글씨 쓰기를 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 몇 가지를 적어 본다.
내가 쓰기 위해서 머릿속에 담고 있는 글의 속도와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속도를 맞추어야 글이 또박또박 써진다. 내 손글씨 속도에 맞춰서 생각을 해야 글씨가 또박또박 써지고, 그런 글씨를 다른 사람들이 잘 읽을 수 있다. 그걸 맞추지 못하고 생각만 먼저 달려 나가면 글씨도 날아가게 되어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들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생각만 앞섰을까? 표현하지 않은 생각으로, 설득되지 않은 ‘나’만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잘 쓰려고 펜을 잡고 있는 손에 너무 힘을 주면 오히려 안 써진다. 적당히 힘을 빼고, 적당히 힘을 주어야 잘 써진다. 적당히 힘 빼고 쓴 글씨가 가장 여유롭고 아름답고 내 맘에 든다. 세상 일도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적당히 힘 빼고 마음을 비우고 임해야 주변 사람들의 공간도 만들어지고 일이 더 잘 될 여지가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쓰면 예쁠까 저렇게 쓰면 예쁠까 하여 이렇게도 써 보고 저렇게도 써 보면 엉망이 된다. 전체 페이지를 보면 균형이 맞지 않고 엉망이다. 한 페이지를 관통하는 글씨체의 일관성이 있어야 아름답다. 한 자 한 자 뜯어보면 다소 어색해도 일관성만 있으면 괜찮아 보인다. 세상 일도 이랬다 저랬다 자신 감 없이 우왕좌왕하다 보면 될 일도 안 된다. 우직하게 원칙대로 밀고 가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취미가 어린애 답지 않게 ‘서예’였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교육에 좋다고 생각하셨던지 서예교본과 붓, 먹, 벼루, 문진 등의 세트를 선물로 사 주신 이후로 학교에서 다녀오면 신문지를 펴 놓고 한 글자 한 글자 붓글씨를 연습하곤 했었다. 우리 조상들은 글씨 쓰는 것을 ‘서예’라고 할 만큼 예술로 승화시켰고, 글씨를 보고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정도로 글씨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이 인격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벼루에 먹을 갈고 붓을 씻어 가며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무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그냥 펜을 들고 손글씨를 신경 써서 차분히 끄적거려 보는 것만으로도 수양도 되고 위안도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어린 시절 글자를 처음 배울 때가 떠오를 지도 모른다.^^
새로운 취미로 ‘손글씨 쓰기’를 적극 추천한다. ‘손글씨 쓰기’로 ‘초심’과 ‘여유’와 ‘우직함’ 같은 덕목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권해 본다. 가장 간단한 인격수양의 방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