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 후 요리를 시작한 것은 셋째가 태어나고 나서 아내와의 가사분담 협상을 통해서다. 나는 청소나 설거지처럼 단순 반복 작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또한 갓 태어난 막내를 보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아내가 요리를 해야 하니 셋째를 좀 보겠냐며 아이를 나에게 맡겼는데, 나는 아이 보는 것보다 요리가 쉽고, 재미도 있어 보여서 차라리 내가 요리를 한 번 해 보겠노라고 했다. 사실 요리는 총각 때 자취생활을 하면서 조금 해 봤던 터라 기본적인 것은 쉽게 할 수 있을 듯했다. 아내는 요리도 지겨웠는지 내가 처음에는 미덥지 못했을 텐데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처음에는 갓 태어난 막내를 보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해 보이는 아내에게 주말 늦잠이라도 선물하자고 주말 아침 당번을 자청하고 나섰다. 토요일, 일요일 아침만 하던 게, 애들도 아내도 맛있다고 해 주니 자꾸 하게 되고, 약속 없는 주말에는 아예 요리를 내가 전담하겠다고 했다. 주말에 도왔어야 하는 이런저런 가사 일들도 요리를 하는 것으로 모두 면제가 되었다. 요리가 적성에 맞는지,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이것저것 재료도 바꿔서 넣어 보고 하면서 재미가 붙어갔다. 저녁 약속이나 주말 약속이 거의 없는 미국으로 가고 나서는 주중 저녁 요리도 가끔 하고, 일요일에는 주중에 먹을 밑반찬을 만들어 놓기도 하니, 이제 요리로만 보면 아내와 나의 부담 비중이 반반이거나 오히려 내가 더 많이 하게 되어 버린 것 같다.
사실 레시피는 인터넷에 수도 없이 많이 있어 내가 요리를 썩 잘한다고 해도 좋을지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뻔히 있는 레시피를 보고도 제대로 맛을 못 내는 사람들을 보면 적어도 나는 레시피대로 맛을 낼 줄은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는 요리나 일이나 비슷한 부분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요리에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덕목들이 그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레시피를 순서대로 따르는 것부터 필요하다. 레시피를 읽고도 그대로 하지 않고, 허둥지둥하면서 순서도 지키지 않고, 양도 지키지 않고, 시간도 지키지 않으면서 본인은 요리에 소질이 없다고 한다. 문서로 되어 있는 것과 본인의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 일이든 요리든 기본이다. 이런 기본기 없이는 어떤 결과도 낼 수 없다.
둘째, 기본기만 갖고는 부족하다.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레시피를 읽으면서 양념은 왜 이런 비율일까? 좀 더 익히면 어떤 맛이 나고, 덜 익히면 식감이 어떨까? 예전에 먹어 봤을 때, 어떤 맛이었을까? 달콤 짭짜름하게 할 것인가? 달콤 매콤하게 할 것인가? 등등 이런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하면 요리가 어렵다.
셋째, 스피드가 있어야 한다. 보통 레시피에는 고기를 재운다든 지, 국물을 우린다든 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절차가 진행될 때, 어떤 걸 하면 시간이 단축되는지 등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신선한 음식을 내어 놓을 수 있다.
넷째, 정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레시피를 보고, 아무리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해도 마지막은 정성으로 요리가 마무리되는 것 같다. 건강에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고, 마지막 플레이팅까지 정성을 쏟은 음식을 보면 눈도 입도 즐겁다.
기본기, 상상력, 스피드, 정성이 내가 느낀 요리와 일에 같이 필요한 덕목들이다. 이것들이 잘 어우러져야 좋은 요리, 성과 높은 일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요리하듯 일하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요리하듯, 사랑하는 동료, 상사들을 위해서, 고객들을 위해서 일하면 어떨까?
요리만큼 사랑하는 이에게 정성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요리를 통해서 줄 수 있는 것은 음식의 맛과 향만이 아니다. 어떤 요리를 해 줄까 고민하면서 장바구니에 재료를 담으면서부터, 재료들을 손질하고 익히고 예쁜 그릇에 정성껏 담는 순간까지의 생각과 노동 또한 오롯이 먹는 이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