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2 때인가? 담임선생님께서 조용히 불렀다. 'OO아, 교육청에서 학부모 독후감대회가 있는데, 우리 반에서 엄마가 고졸인 애가 너밖에 없다. 엄마한테 가서 독후감 하나 써 달라고 선생님이 부탁드린다고 좀 해라.' 당시에는 생활기록부에 TV가 있는지, 냉장고가 있는지, 피아노가 있는지에 덧붙여서 부모님 직업과 학력을 적는 칸이 있었다. 학기가 시작되면 그걸 들고 집에 가서 엄마랑 적었다. 아버지는 대졸, 엄마는 고졸을 자랑스럽게 적었다. 시골에서 부모님 학력치고는 최고 수준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중학교 수학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엄마는 늘 동네에서 '사모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다. 동네의 아줌마들과 달리 말씀도 되게 고상하게 하고, 짬짬이 우리가 읽는 책도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도 많이 보시는, 시골에서는 무척 '교양 있는 사모님'처럼 보였다. 엄마가 집안일하느라 바쁘고, 엄마의 글쓰기 실력을 선생님이 보시니 부끄러워하시겠지만, 난 뭐 엄마가 자랑스럽기만 했다.
집에 와서 엄마께 말씀을 드렸더니, 엄마가 당황해하시면서, '알았다. 써 주마.' 하고는, 한숨을 푹 쉬셨다. 그리고는, 내 방의 책장을 쓱 훑어보시더니, '닥터 슈바이처'라는 책을 뽑아 들었다. 당시에 엄마는 당신을 위한 책을 사 볼 여유는 없어서 자식들이 보는 책들을 같이 읽곤 했었다.
2주 후쯤에 엄마는 원고지에 연필로 또박또박 독후감을 써서는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하도 오랜만에 글을 써 봐서 참 부끄럽다. 선생님 갖다 드려라.' 하셨다. 그러면서 또 한숨을 푹 쉬셨다. 내용이야 어떻든 엄마가 우리처럼 독후감 같은 걸 썼다는 것 자체가 참 자랑스러웠다. 엄마의 글씨도 예뻐 보였고, 다른 아줌마들보다 가방 끈이 긴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엄마가 방으로 불렀다. '엄마가 비밀 하나 얘기해 줄게. 엄마 사실 중졸이다. 엄마는 공부가 참 재밌었는데, 너희 외할아버지께서 너희 외삼촌들 학교 다니는데, 밥 해 줘야 한다고 고등학교를 보내주지 않으셨다. 너희 아버지 면도 있고, 너희들 생활기록부에도 적히는 거니까 내가 좀 거짓말을 했다. 아이고 내가 좀 미안하다. 부끄럽구나' 하셨다. 말씀을 하시는 동안 고개도 떨구고 얼굴도 불그레 상기되셨다. '엄마, 그게 뭐 미안하고 부끄러워요? 고맙기만 하고만. 엄마 고졸 아니어도 교양 있고, 책도 많이 읽어서 요즘에는 엄마가 대졸인 아버지보다 더 유식해 보여요. 하하' 말씀을 드렸지만,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국민학교나 중학교 때 엄마가 중졸인 걸 알았다면 실망했을까? 부끄러웠을까?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복잡했을 심경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내가 그래도 좀 철이 들어서 엄마한테 그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태까지 숨기고 기다려 준 엄마가 오히려 고마웠다.
엄마는 3남 2녀 중 둘째다. 위로 오빠가 한 분, 남동생 두 분에 여동생 한 분이다. 외갓집은 진양군의 시골이었고, 중학교부터 공부를 진주시내에서 했었다. 엄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5살 즈음부터 외할아버지가 마련해 준 진주시내의 집에서, 외삼촌 셋, 이모 한 분이 공부하는 동안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셨다. 밥도 하고, 도시락도 싸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셨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큰 농사와 사업을 하셨고, 외증조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엄마는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 졸업하고 훌륭한 공무원이 되고, 사업가가 된 외삼촌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난 우리 엄마만 왜 공부 안 시켰을까 서운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그 일로 외할아버지께 서운하다고 하신 적이 없다. 그냥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하고 빙긋 웃으신다.
엄마 연세가 80이 다 되었을 때, 엄마에게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요? 뭐 그런 거 없었어요? 외삼촌들처럼 공부했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텐데, 안 억울했어요?' 하고 여쭸던 적이 있다. 엄마는 '몰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네. 뭐가 되고 싶다 그런 거. 그냥 살기 바빠서 그랬나? 하하'
아직도 엄마는 뭔가 서툰 일을 하면 '내가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안 이럴 텐데.'라고 가끔 말씀하신다. 혼자 해외여행 가기가 두렵고, 핸드폰 기능들도 다양하게 못 쓰고... 80세가 넘은 노인이면 대부분 그럴 일들을 그렇게 말씀하신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뉴스를 듣고, 나한테 '너희 회사에 북카페 같은 거 있더구먼, 거기 한강작가 작품 같은 거 있으면 좀 빌려 와 봐라. 함 읽어 보게.' 하셨다. 내가 '엄마, 내가 몇 권 사드리까?' 했더니, '이 나이에 뭐 사서 읽을 건 아니고...' 하셨다. 내가 대학 때부터 읽어서 책꽂이에 꽂아 놓은 책들을 엄마는 모조리 읽으셨다. 요즘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책을 붙들고 사신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셔서 인지, 세상사 어려서부터 많이 참고 사신 탓인지, 엄마는 동네에서도 집안에서도 꽤 존경받는 어른이 되셨다. 싸울 일을 안 만들고, 싸우면 잘 말리고, 집안 대소사를 경우에 맞게 잘 판단하신다고 정평이 나 있다. 언젠가 외갓집일에 작은 다툼을 엄마가 해결한 걸 듣고는 외숙모님이 '참 훌륭한 엄마 밑에서 자랐구나.' 칭찬해 주신 적도 있다. 그런 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엄마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중학교 때 엄마가 쓴 '닥터 슈바이처를 읽고'는 나에게만은 세상 가장 소중한 독후감이다. 학부모 독후감 대회에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지만, 진정 나에게는 사랑의 박사학위감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