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자리, 마음의 그늘
창고
이 집에 ‘광’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주방 너머, 다용도실을 지난 가장 안쪽 베란다.
자전거처럼 집안엔 둘 수 없지만
버릴 수는 없는 것들—
계절의 영향을 덜 받으며 있어야 하는
그런 물건들을 위한 공간이다.
게다가 이 아파트는 재활용 수거, 주 1회란다.
그 주기를 버텨낼,
적재 가능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길 어둡고 습한
쓰레기장 같은 공간으로 둘 순 없었다.
엄연히 집 안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곳은,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우리 집의 숨통 같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자잘하고 복잡한 것들이 모였다 흘러나가는,
작지만 흐름을 이어주는 통로.
———
가장 비용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손보기로 했다.
타일은 그대로 두고,
벽은 모조리 하얗게 페인트칠을 할 예정이다.
그래도 최소한 숨이 트이는
깔끔한 공간이 되기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을 하니까.
세탁실
그 옆은 세탁실, 혹은 다용도실.
처음엔 이곳을 알차게 꾸밀 생각이었다.
일체형 세탁기와 건조기,
그 주변으로는 음식물 처리기, 쓰레기통까지
깔끔하게 수납되는 구조.
건조기에 넣을 수 없는 셔츠나 바지들이
천장 옷봉에 늘 걸리게 될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이 집은 늘 계획을 밀어낸다.
바닥엔 겨우 덧방 타일.
이것마저도 비용 문제로 삭제될 뻔했지만
간신히…
벽은 광처럼 하얗게만 칠하고,
가구는 일단 미완.
실제로 살아보며
그때 필요한 수납장을 고민하기로 했다.
사적인 외부 공간: 테라스
그리고 그다음.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고민하는 곳.
다이닝존 뒤 픽스창을 지나 마주하는 작은 베란다.
나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이름을 붙여왔다.
사적인 외부공간.
나의 테라스.
무엇을 둘지는 살아가며
차차 발견하게 되기를 바랐고,
머잖아 분명 내 쉼표가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그 어떤 언어로도 쉽게 미화하기 어렵다.
바닥은 오래된 타일에
금이 가고, 얼룩이 배어 있다.
샷시는 낡은 알루미늄 프레임 그대로다.
사실 남향 쪽 방들의 샷시는 모두 교체했다.
하지만 비용 때문에 북쪽은 그대로 두기로 했고,
이제 와서 보니 그 차이가 너무 선명하다.
매일 지나갈 때마다 후회가 스친다.
새로 단 베란다등조차
왜인지 일부러 못나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벽은 페인트칠로 조금 나아질 거라지만
아직도 어딘가 비어 있다.
집에 ‘버리는 공간’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데,
지금 이곳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그늘이 되어 있다.
⸻
방법을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바꿀 수 있을까.
원하는 건 두 가지.
청소가 용이할 것.
벌레가 꼬이지 않을 것.
그래서 우드 데크는 제외. 벌레와 습기 때문에.
데코타일도 얼룩과 오염이 걱정돼서 포기.
마모륨도 곰팡이 문제로 불안했다.
남은 건 에폭시.
카페 둥에서 자주 보이는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의 바닥.
하지만 여태 함께 달려온 우리 디자인팀은
“갈라질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래도 지금보단 나을 텐데…’
비용은 묻지도 못했다.
“그건 셀프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조금, 서운했다.
지금까지 함께 결정해 왔던 그 많은 것들.
그런데 유독 이 공간만
혼자 떠안게 된 느낌이었다.
⸻
오늘도 네이버에 검색만 해보다가
‘베란다 에폭시 시공, 기간 비용 방법…?’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계속 전전긍긍만 하고 있다.
결국 이 공간만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하다.
알고는 있다.
모든 것엔 한계가 있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는 게 있다는 걸.
그럼에도 자꾸,
이 공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이 공간을 포기할 수 없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풍경이 담기는 곳,
하지만 바람과 빛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
지금은 거칠고 낡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마음이 가는 곳이 되고 있다.
마음이 붙는 곳은,
완벽한 공간이 아니라
고치고 싶은 곳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