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됐다, 여기다“

이 집은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됐다.

by 생활미감


그전 집은

아무리 봐도 맞지 않았다.


좁았고, 멀었고, 불편했다.

단지 크고, 재건축 유망하다는 말은 넘쳐났지만

좀처럼 위안이 되지 않았다.


출퇴근만 하루 네 시간.

운전하며 졸았고,

집 안에선 화장실 하나로 온 가족이 줄을 섰다.


동네에도 정이 가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아이도.

아무리 ‘투자 가치’가 높다 해도

사는 내내 어딘가 이방인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계속 나를 설득하며 살아야 했다.

‘언젠간 재건축될 거야.’

‘다들 좋다고 하니까.’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지.’

그렇게 매일, 나를 타이르며 견디는 삶이었다.


그런데 점점 더

그 불편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의심이 커졌다.

아들은 커가고,

함께하는 일상은 점점 줄어들고,

나는 매일같이 지쳐만 갔다.

비좁은 복도, 툭하면 멈추는 엘리베이터,

멀고 고단한 출퇴근길.


————


결국 결심했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좋다고 느끼는 곳으로 가자.


물론 쉽지 않았다.

서울 안에서, 현실적인 예산으로,

넓고, 화장실 두 개 있고,

직장과 학교 모두 가까운 집을 찾는다는 건.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내 공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집을 찾고 싶었고,

어느 날, 정말 그런 집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

오래됐고, 물이 샜고, 창틀도 낡았지만

나는 이 집을 보자마자

“됐다, 여기다” 싶었다.


지하철 5분 거리,

직장과 학교 중간 지점,

넉넉한 평형, 두 개의 화장실.


무엇보다도

‘나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설명이 안 되는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한강 조망은 없잖아.”

맞다.

하지만 그 대신 조용하고 따스한 초록 풍경을 얻었다.

채광 좋은 작업 공간도,

가족 모두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동선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집은 나를 설득시키지 않는다.

그냥 이 집은, 처음부터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들은 2년 뒤면 유학을 간다.

그 후 이 집에서

나와 남편, 우리 둘이 살아갈 날들을 그려본다.

다시 집을 꾸리고,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그렇게 ‘우리의 집’을 완성해 가는 시간.


이 집을 얻고,

직접 고치고,

가끔은 실망하고,

더 자주 감탄하며

나는 요즘 하루하루

‘내 공간을 만든다’는 감각으로 산다.


어쩌면 이건 인테리어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설계하는 프로젝트인지도 모른다.



※ 이 글은 브런치 시리즈 《다시, 집》의 번외편입니다.

10편의 여정을 지나 잠시 숨을 고르며,

‘왜 이 집이어야 했는가’에 대한 작은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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