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다가, 필요하다가, 받아들인 여정
거실에서 TV를 없앤다는 건
단순한 가구 배치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새로 짜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때 나는 그렇게 믿었다.
첫 번째 집 “TV는 해로워”
일하는 엄마가 집에 없는 동안
아이가 이모님과 나란히
TV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낼까 봐
전전긍긍했던 초보 엄마.
6살 아들의 우주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극으로 채워주고 싶었던 마음에
TV는 그냥… 방해물이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TV를 제일 사랑하는’ 남편을 설득해
거실에서 TV를 치웠다.
대신 거대한 책장을 들이고,
낮은 소파와 1인 체어를 마주 보게 배치했다.
사이드 테이블 위엔 조명도 두고.
아늑하고 고요하고 그윽한 공간.
TV만 사라지면,
우리 가족이 더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근데 실제로는…
거실엔 대부분 나 혼자 있었다.
아이는 주방 아일랜드 속 책장에서 책을 꺼내
그 바닥에서 뒹굴거나
식탁에 앉아 보거나,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며 읽었고,
남편은? 안방으로 이사 간 TV 앞에서
퇴근 후 시간을 보냈다.
나 홀로 거실에 앉아
음악 틀고 책 읽고…
그 소파 위엔 개어야 할 빨래 더미가 쌓이곤 했다.
거실은 점점, ‘거실’ 같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통로.
가운데가 텅 빈 도넛 같은 집.
야심 차게 꿈꿨던 가족 공간은 어디 갔을까.
———
부작용은 안방에서 터졌다.
TV가 안방에 자리 잡으면서
우리 집에서 가장 북적이는 장소가 침실이 된 거다.
하루에 한 편은 꼭 봐야 한다는 아이의 포켓몬스터,
새벽까지 채널 돌리고 싶은 남편,
그 옆에서 빛과 소리 때문에 잠 못 드는 나.
“TV는 해로워… 없애야 해.”
그 결심은 결국,
불쏘시개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꼴이었다.
두 번째 집, 사춘기 아들 기다리기
10년 뒤 집을 다시 꾸밀 때,
아들은 ‘무서운 중2’가 되어 있었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이 예민한 녀석을
거실로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엔 TV를 거실로 당당히 들여왔다.
가족이 함께 모일 핑계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유튜브와 넷플릭스…
개인 미디어의 시대였다.
아들은 여전히 자기 방에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보고,
거실 TV는…
결국 블루투스 헤드폰 낀 남편 차지가 되었다.
다시 깨달았다.
공간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공간을 쓴다는 걸.
세 번째 집,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이번엔 아예 다른 방식을 택했다.
TV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의 방을 만들고,
그 벽에 TV를 깔끔하게 매립했다.
이젠 더 이상 TV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
거실에 둘지, 안방에 둘지,
어떻게 감출지… 그런 거 안 한다.
그냥 받아들였다.
TV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TV가 필요하다는 걸.
TV 없는 거실에서
TV 중심의 거실을 거쳐
각자만의 TV 공간까지.
15년 이 여정이 내게 가르쳐준 건,
가족 인테리어란
내 이상을 구현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양보하고…
때로는 포기하는 거라는 것.
어린 아들의 TV를 막고 싶었던 엄마,
중2 아들을 TV의 힘을 빌어서라도
거실로 불러내고 싶었던 엄마,
⸻
이번 거실에는
TV도, 거대한 책장도 없다.
그냥 햇살이 들어오고,
잠깐 앉았다 가는 자리.
그리고 문 하나 건너편에서
남편은 자기만의 방에서
마음껏 TV를 보고 있겠지.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함께 앉아 있지 않아도,
각자 편안하면
그것도 우리고,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