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고쳐가는 집
퇴근하자마자 현장에 들르는 것이
요즘 나의 루틴이다.
어제는 주방이며 욕실이며,
손이 닿아야 할 모든 곳에
하나하나 마스킹테이프를 붙였다.
샤워볼 위치, 휴지걸이 높이도
직접 앉아보고, 서보고,
동선을 그리며 체크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작은 디테일들이 내 삶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인 조심스러운 고민들이
결국은 ‘살 수 있는 집’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살고 싶은 집’이 된다.
욕실장이 작아 수건 놓을 자리도 없어
애먹었던 지난 집이 떠올랐다.
이번엔 넉넉한 수납 덕분에
“수건을 꽉꽉 채울 수 있겠다"며 웃었다.
오늘 아침,
출근 전 다시 서둘러 집에 들렀다.
어제는 너무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아서.
조용한 아침의 집을 혼자 찬찬히 보고 싶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벌써 에어컨 팀이 도착해 있었다.
커다란 장비들이 방 안에 조용히 기대어 서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한 발 비켜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햇살이 스며드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종이 보호판의 질감,
텅 빈 집 안의 먼지마저도
그 순간엔 괜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번 인테리어는 세 번째다.
두 번째 집부터 지금까지
같은 인테리어팀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안다.
샤워볼걸이, 수건걸이, 휴지걸이, 비데 스위치,
베란다 수전의 모양과 샤워기 설치 여부,
붙박이장에 걸이 타일을 어디에 둘지,
옷장 안 거울 위치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물어봐줬다.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게
모든 것을 하나하나 확인해 줬다.
"지금 정해두는 게 나아요."
그 말 한마디에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어젯밤, 우리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보호판이 깔린
커다란 아일랜드 위에 햄버거를 펼쳤다.
쉑쉑버거.
서서 먹은, 이 집의 첫 식사였다.
큰 아일랜드에서
스탠딩으로 햄버거를 먹는 경험은
마치 소풍처럼 낯설고도 설렜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나눈 소박한 한 끼.
그 순간,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만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못 고친 부분이…
손도 못 댄 곳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이 먼저 들어와 버렸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삶은 다 고쳐진 집에서가 아니라,
살면서 고쳐가는 집에서 피어나는 것이니까.